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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10년을 지켜봤다, 한국경제 기초 튼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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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미국 경제엔 ‘닥터 둠(Doom·파멸)’이지만 한국 경제엔 ‘닥터 붐(Boom·호황)’이었다.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parkys@joongang.co.kr

27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SBS 주최 서울디지털포럼 참석차 한국에 온 누리엘 루비니(50·얼굴)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 상징처럼 돼 버린 헝클어진 머리에 헐렁한 양복, 어두운 표정의 루비니가 연단에 오르자 긴장감이 돌았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 대형 은행의 몰락 등 불길한 예언을 잇따라 적중시켰고, ‘회복’을 이야기하던 이들에겐 “아직 최악은 멀었다”며 일갈하던 그였다. 지난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강연에서도 “브라질 정부의 경기 전망은 너무 낙관적이며, 현재 이곳의 경제 신호는 청색이 아닌 황색”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이번엔 한국 차례였다. 그가 공식 석상에서 한국 경제의 전망을 내놓는 건 처음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는 한국 경제를 희망적으로 봤다.

“한국은 개방경제 국가로서 성공을 이룬 모범 사례다.” 일단 칭찬으로 운을 뗀 그는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5%를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잠재성장률인 4%에 못 미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등 대부분의 국제기구·경제전문가들보다 후한 점수를 줬다.

특히 그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한 경험을 높이 샀다. 루비니는 “1997년 이후 한국 경제를 유심히 지켜봤다”고 말했다. 당시 아시아·중남미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난 위기를 집중 연구한 그는 2000년대 중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 희생양은 “‘가장 큰 신흥국’인 미국”이라고 답한 바 있다. 엄청난 재정 불균형에 시달리면서 허술한 금융 시스템을 방치하는 등 신흥국의 실패 사례를 답습했다는 이유였다. 이와 달리 그는 “한국은 위기 이후 10년간 경제정책·시스템을 잘 바꿨다”며 “이것이 이번 위기를 더 빨리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작은 내수시장 규모, 제조업 분야에서 과잉 생산 능력 등은 불안요소라고 지적했다. 보다 적극적인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을 통해 효과적이고 경쟁력 있는 구조를 만들라고 주문했다. 최근 북핵 사태와 관련해 “(증시가) 하루 만에 자신감을 회복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고 분석했다.

이날 루비니는 세계 경제에 대해서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는 “세계 경제가 어렵지만 희소식은 있다”며 “대다수 정부의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말했다. 회복 시점으론 올해 말을 제시했다. 그렇다고 그가 갑자기 낙관론자로 돌아선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물컵에 반이 남았다”와 “반이 줄었다”는 표현의 차이일 뿐, 회복의 기간이 길 것이란 기존 전망은 그대로라고 덧붙였다.

또 신흥국에 비해 선진국의 회복이 더 오래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미국 경제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는 “민간 부문의 부채가 정부 부문으로 옮겨오고 있어 재정적자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를 메우기 위해 더 많은 달러를 찍어낸다면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김필규 기자 ,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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