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민사회에서도 파워엘리트 이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정권교체의 영향은 해외 교민사회에도 미치고 있다.

특히 그동안 구여권 지지인사들이 주류를 이루던 미주지역 한인회나 민단 (일본) 등 교포단체에는 '해외판 파워엘리트 이동' 조짐도 엿보인다.

역대정권에 의해 '찬밥' 취급은 물론 불온시되는 경향마저 있었던 미국의 '김대중 (金大中) 미주후원회' 나 일본의 '김대중 납치구출대책위원회' 는 지난 대선후 부쩍 활기가 넘친다는 소식이다.

뉴욕한인회 출신인 박지원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의 성공신화를 교과서 삼아 새 정부에서 한자리 해보려고 열심히 운동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

한인회.한인상공회.민주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등 3개단체가 이른 바 '주류' 단체로 활동중인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대선후 김대중미주후원회와 한국인권문제연구소 LA지회 등 金대통령을 줄곧 후원해 온 양대단체의 기세가 한껏 높아졌다.

대선후 재건된 아태재단미주후원회 등 4개 단체는 최근 '10인 위원회' 를 구성, 활동에 보조를 맞춘다는 원칙에 합의한 상태. 대선당시 이회창 (李會昌) 후보 지지인사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것으로 알려진 주류 3개단체 내에서는 뒤늦게 새 정부에 줄을 대려는 움직임도 일부 포착되고 있다.

미국내 한 지방도시의 한인회장은 운영하던 슈퍼마켓까지 처분하고 서울을 오가며 논공행상의 막차라도 타려고 분주하다는 소식. 대다수 교민들이 대선결과에 관계없이 생업에 몰두하는 가운데 이들 '줄대기파' 는 청와대.행정부.정부산하기관의 자리나 올해 지방선거에서의 여당공천을 목표삼아 경우에 따라서는 눈살 찌푸려지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뉴욕지역에서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그동안 개별적으로 움직이던 김대중.김종필.박철언씨 후원조직이 '비전21' 이라는 통합조직으로 출범한 바 있다.

DJP연대에 크게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이 단체가 대선후 부쩍 활기에 넘치는 것은 당연한 일. 지난달 20일 일본 도쿄 (東京) 의 데이코쿠호텔에서는 재일동포와 일본정치가 등 3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김대중대통령 당선 축하회' 가 열렸다.

사민당의 도이 다카코 (土井たか子) 위원장, 신당사키가케의 다케무라 마사요시 (武村正義) 전대표, 고노 요헤이 (河野洋平) 전자민당 총재 등이 참석한 이날 모임의 주최자는 '김대중 납치구출대책위원회' .정재준 (鄭在俊) 위원장과 조활준 (趙活俊) 전도쿄 수석비서등이 이끄는 단체는 납치사건을 계기로 70년대에 민단 (民團)에서 떨어져 나갔던 재야그룹이다.

국내에서 반한.반정부단체로 취급받던 이 단체가 도쿄의 특급호텔에서 당당하게 대통령취임 축하연을 벌인 자체가 정권교체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金대통령당선자 (당시) 는 이날 조순승 (趙淳昇) 의원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 "어렵고 암울했던 시절, 격려해주고 도와준 재일동포.일본인들에게 감사드린다" 고 밝혔다.

김대중 납치구출대책위원회는 정권교체와 함께 최근 민단복귀를 모색 중이며 민단도 이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민단은 최근 중앙위원회를 열고 새정부 출범에 맞춰 올해부터 운동방침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민단은 지방본부의 의견을 취합해 다음달 신용상 (辛容祥) 단장 등 대표단을 본국에 파견, 새 운동방침에 대해 정부와 조율에 나설 계획이다.

재일동포들은 민단과 재야조직의 통합 움직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당장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민단의 지도부가 교민들의 선거에 의해 구성된데다 재야 민주단체의 회원들도 60대 이상의 연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뉴욕·도쿄·LA지사 = 김동균·이철호 특파원, 노세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