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휴대전화 디자이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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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기를 끄는 LG전자의 휴대전화 ‘롤리팝’ 디자인 개발에 참여한 김성민 선임연구원이 제품 디자인 시안을 그리고 있다.최승식 기자

‘롤리 롤리 롤리팝, 오 롤리 팝 팝…’.

LG전자가 그룹 빅뱅의 흥겨운 노래를 곁들여 광고하는 ‘롤리팝 폰’. 이 회사 모바일사업부 디자인연구소 김성민(36)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4월부터 롤리팝 폰 개발에 참여했다.

휴대전화 시장에서 젊은 층 고객에게 취약했던 LG전자는 젊은 세대만을 위한 휴대전화를 만들자는 컨셉트를 정했다. 자동차나 냉장고 같은 제품의 디자인은 팀 작업이 많지만, 휴대전화는 각 디자이너가 개별 아이디어를 내는 경우가 많다. 김 연구원은 젊은이들이 선호할 만한 디자인을 찾으려고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중·고등학생들이 일상에서 휴대전화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살폈다. 그들이 좋아하는 연예인 취향도 조사하는 등 40~50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인터뷰는 보통 리서치 회사가 하고 우리는 뒤에서 지켜보곤 했는데, 이번엔 디자이너라는 신분을 감추고 직접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는 자판 버튼이 작고 톡톡 튀는 컬러를 사용한 휴대전화를 디자인했다. 젊은이들이 밝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투명한 이미지도 반영했다. 대략적인 아이디어를 반영해 제품을 스케치한 뒤 사진처럼 보이도록 3차원 애니메이션 그래픽 효과를 주는 ‘렌더링’ 작업을 했다. 롤리팝 폰의 경우 렌더링 단계까지 김 연구원의 디자인을 포함해 7개 후보가 남았다. 이어 실물 크기의 모형을 만드는 ‘목업(mock-up)’ 작업에서 네 개 후보로 좁혀졌다가 최종적으로 김 연구원의 디자인이 채택됐다. 세부 디자인을 다듬고 감리 과정을 거친 뒤 생산라인에 보내져 완제품이 제작됐다. 이를 놓고 김 연구원과 엔지니어들이 수차례 협의를 했다.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 보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한 뒤 롤리팝 폰은 시장에 선을 보였다. 김 연구원은 “휴대전화 디자인은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제품의 질이 좋아지기 때문에 렌더링 품평회를 앞두고는 매일 한두 시간만 자면서 일한다”고 말했다. 한 개 제품 개발이 끝났다고 오래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한 디자이너가 두세 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2~3일 정도 여유를 가진 뒤엔 다시 아이디어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LG전자 모바일사업부 디자인연구소의 직원은 167명. 이 중 40명 정도가 휴대전화의 화면 아이콘 등을 만드는 그래픽 디자인 담당이다. 나머지 120명 정도가 휴대전화 커버를 디자인하는데, 40명은 디자인 컨셉트를 정하고 80명은 제품 디자인에 매달린다.

예술적 재능에 체력과 열정 갖춰야

김 연구원은 경기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뒤 유모차 디자이너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오디오·DVD 플레이어 등을 디자인하다 2004년 LG전자로 옮겼다.

김 연구원은 “휴대전화 디자이너가 되려면 예술적인 재능과 소양이 가장 중요하지만 체력과 열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품 디자인 일이 겉보기와 달리 힘든 직업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들 스스로 ‘3D 업종’이라고 부를 정도다. 디자이너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아이디어를 찾는다고 한다. 김 연구원의 경우 여행을 다니거나 영화를 보면서 영감을 얻는 편이다. 좋은 아이디어를 찾지 못할 때면 며칠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이 다반사다.

“중장년층을 겨냥해 글자 크기를 크게 만든 ‘와인폰’을 어머니께 선물해 드렸는데 한 달쯤 후 ‘아들, 문자 배워서 보낸다. 사랑해’라는 메시지가 왔어요. 정말 뿌듯했습니다.” 김 연구원은 남녀노소 모두가 사용하는 데다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구가 된 휴대전화를 디자인한다는 자체만으로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제품 주기 짧아 우수 디자이너 수요 꾸준

‘디자인경영’이란 말이 화두가 될 정도로 기업들이 제품 디자인에 공을 들이고 있다. 차별화 포인트도 기술력에서 디자인으로 옮겨 가는 추세다. 휴대전화 디자이너의 전망은 밝은 편이다. 휴대전화는 디자인을 보고 구매하는 고객의 비중이 큰 제품이다. 소비자 취향이나 유행하는 디자인의 변화 속도도 빨라 제품 수명이 짧다. 그래서 기업들의 디자인 인력에 대한 투자가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인크루트 이광석 대표는 “휴대전화 산업에서 디자인의 영향력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며 “관련 업계 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우수한 역량을 가진 휴대전화 디자이너의 경우 기업들이 서로 영입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탁 기자

자료 협조: 인크루트 www.incruit.com

유행 읽는 건 기본 … 하드웨어 이해도 중요

휴대전화 디자이너가 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현직 휴대전화 디자이너 12명에게 물었더니, 취업을 하기 위해선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응답(50%)이 가장 많았다. 관련 학과 출신이 유리하다는 의견이 33.3%로 다음이었다. 산업·제품·그래픽 디자인 등 전공을 많이 따진다는 얘기다. ▶출신 대학 등 학벌 ▶공모전이나 대회 입상 경력이 뒤를 이었다.

입사 지원 시 면접은 어떻게 봤느냐는 질문(복수 응답)에는 실기시험과 프레젠테이션(포트폴리오 및 과제) 면접이 각각 58.3%로 가장 많았다. 인성 면접(50%)과 토론 면접(41%)을 봤다는 응답이 다음 순이었다.

현업에서 가장 요구되는 능력으로는 창의성(33.3%)을 가장 많이 꼽았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상품화 감각, 관련 전문지식·트렌드를 읽는 눈, 디자인 실력 순이었다. 휴대전화 디자이너로서 어려운 점으로는 ▶창작에 따른 정신적 부담 ▶빠른 유행이나 트렌드 변화를 쫓아가야 하는 점이 가장 많이 꼽혔다. 타 부서와의 의사소통 문제, 과도한 업무량과 야근도 힘든 점이었다.

이 조사에서 보듯 휴대전화 디자이너가 되려면 4년제 대학의 디자인 관련 학과에 진학하는 것을 우선 준비하는 게 좋다. 졸업 후엔 자신의 실력을 담은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갖춰둬야 한다. 실제 사용할 사람들을 위한 가전제품인 만큼 소비자의 심리와 수요를 꿰뚫어 보고, 트렌드를 파악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현직 선배들의 지적처럼 창의력이 필요한데, 사소한 물건이나 주변에서 보이는 디자인을 지나치지 말고 관심 있게 살펴보는 습관을 갖는 게 도움이 된다.

제품에 대한 이해와 의사소통 능력도 이 분야에선 필수적이다. 현직 휴대전화 디자이너들은 후배들에게 “디자인만 생각하면 안 되고, 제품에 대한 기술적인 이해가 필요하니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휴대전화의 기능적인 측면이나 하드웨어와 관련된 기술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효율적으로 다른 부서나 소비자에게 전달하지 못하거나, 디자인의 효용성을 설득하고 조율해 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디자인 역량이 우수해도 쓸모가 없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휴대전화 디자이너의 평균 연봉은 3743만원이다. 휴대전화 생산업체가 주로 대기업이고 전자제품 중 요즘 ‘뜨는’ 업종이어서 임금 수준은 높은 편이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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