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선율에 열정을 실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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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천안박물관 공연홀에서 첫 공연을 갖는 천안클래식기타합주단. 왼쪽부터 김윤배(51·예원대 관현학과 교수), 김정미(45·피아노학원 운영), 이종덕(41·자영업), 이근재(45·택시기사), 정종화(55·주부), 원종목(55·조경업), 박영근(35·순천향병원 방사선사), 허경건(20·대학생), 민영길(42·자영업), 이호(36·자영업)씨.조영회 기자

19일 오후 8시 천안 성정동 작은 빌딩의 2층 기타학원 앞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기웃거린다. 학원수업 도중 쉬는 시간 짬을 내 밖으로 나온 것이다. 여학생들은 까치발을 딛고 창문 너머로 S.Myers의 명곡 ‘까바티나’의 선율에 빠져들었다. 시대는 변했지만 여고생들에게 기타선율은 여전히 가슴을 설레게 했다. 이 선율의 주인공은 기타학원 수강생들. 예사롭지 않은 기타연주 솜씨를 자랑하는 이들은 바로 ‘천안 클래식기타합주단’이다.

2007년 말 결성된 ‘천안 클래식기타합주단’은 9명의 단원과 김윤배(한국기타협회 천안지부장) 예원대학교 관현악과 교수로 이뤄졌다. 기타를 좋아하고 배우고 싶던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든 지 2년. 천안 클래식기타 합주단이 드디어 아마추어 기타리스트로서의 첫 무대를 30일 천안박물관 공연홀에서 오후 6시30분에 갖는다. 이날 공연은 무료 입장이다.

◆내 이름은 ‘악장’= 천안 클래식기타합주단의 결성을 제안한 사람은 악장 이근재씨다. 학창시절부터 기타연주를 즐겼던 그는 인터넷 동호회를 운영하면서 기타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온라인상의 동호회다 보니 새로운 악보나 기타공연 소식을 공유할 수 있지만 막상 만나서 연습을 하고 연주를 맞춰보기에는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쉬움을 느낀 이씨는 기타를 좋아하고 실력 있는 지역 사람들을 모아 합주단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 길로 김 교수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김 교수와는 몇 년 전 그의 기타학원에서 선생과 수강생으로 만난 사이였다. 김 교수는 천안에서만 30년 넘게 학원을 운영해온 교육자다. 김 교수는 열정과 실력을 겸비한 수강생들을 이씨에게 소개했다. 소개받은 수강생 중 ‘제대로 된 공연장에서 연주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 단원을 모집하고 합주단을 창단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 이씨는 “기타연주가 생업이 아닌 상황에서 화요일 저녁마다 정기적으로 연습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9명의 단원들이 2년 간 동고동락할 수 있었던 것은 성취감이었다. 합주단 악장을 맡고 있는 이씨는 “서로 직업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단원들이 기타라는 공통점으로 모여 매주 2~3시간씩 비지땀 흘리며 맹연습을 했다”며 “단원들의 손끝에는 굳은살이 훈장처럼 박혀있다. 누구 하나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만큼 연주회에서도 빛나길 바란다”라고 단원들을 격려했다.


◆하루 종일 ‘기타 생각’=단원 민영길씨는 며칠 전 자동차사고가 날 뻔했다. 일할 때도 기타를 옆에 끼고 업무를 보는 그가 운전 중에 기타 생각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민씨는 “연주회를 앞두고 있으니 머릿속에 기타생각뿐이었다. 다들 바쁜 와중에 연주회를 준비하고 있어 연습에 대한 의무감이 생긴다”며 “내 일을 조금 못하더라도 보람을 찾기 위해 뭉친 만큼 단원들이 틈틈이 개인연습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와 직업, 기타를 배워온 횟수까지 제 각각인 그들이 하모니를 이룰 수 있기까지 단원들은 연습과 열정을 무기로 달려왔다. 합주단의 막내 허경건씨는 “학교에서 기타를 전공하는 나보다도 열정이 넘치는 단원들을 만나 기타에 애정이 더 생겼다”며 드디어 합주단이 창단돼 자부심이 생긴다고 전했다. 이제 합주단 단원들에게 남은 고민이 있다면 창단 연주회에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주기만 하면 좋겠다고 한다.

김윤배 교수는 “연주회가 끝나면 단원들은 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연주회의 감동을 한 동안 단원들에게 일상의 엔돌핀이 될 것”이라며 “6월 초에 새 단원을 모집할 계획인데 삶의 활력을 찾고 싶은 기타애호가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입단 문의 민영길 018-748-3745.

조민재 인턴기자 m96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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