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정국 권영해씨 파문]윤홍준 미스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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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권영해 (權寧海) 전안기부장의 소환 조사로 재미교포 윤홍준 (尹泓俊.31) 씨의 '김대중 (金大中) 후보 비방 기자회견'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그러나 한가지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다.

자신이 공개적으로 비방한 후보가 대통령이 됐는데도 尹씨가 왜 입국해 구속됐느냐는 점이다.

지난해 12월16일 63빌딩에서 비방 기자회견을 가진 후 곧바로 미국으로 출국했던 尹씨가 재입국한 것은 불과 1주일 후인 지난해 12월23일. 尹씨는 기자회견 직후부터 검찰의 추적을 받았으나 아무런 제지없이 입국해 당시 權안기부장이 수고비조로 제공한 20만달러를 챙겨 또다시 출국했다.

검찰은 尹씨의 기자회견 당일 "회견 내용과 배경에 의심할 점이 많다" 고 판단, 출국금지 조치와 함께 수사관들을 김포공항 등으로 보내 검거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검찰은 尹씨의 재입국 및 출국 사실을 뒤늦게 파악, 출국 이틀 뒤인 12월25일에야 입국통보 대상으로 올려 놓았다.

검찰의 실책으로 미제사건이 될 뻔했던 이 사건 수사가 활기를 띠게 된 것은 尹씨가 지난 2월10일 또다시 입국했기 때문이다.

이 때는 새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서슬이 시퍼런 상태였고 더구나 그는 입국과 동시에 연행될 처지였다.

그런데도 그는 재입국했고 이틀 뒤 강남의 한 호텔에서 연행돼 구속됐다.

왜 그랬을까. 김원치 (金源治) 남부지청장은 "교포3세인 약혼녀가 '한국에 가보고 싶다' 고 해 동반귀국했다" 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의 약혼녀는 이미 서울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또 尹씨의 변호를 맡은 이재훈 (李宰勳) 변호사는 "사업 때문에 입국했다고 하더라" 고 해 검찰의 설명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런 정황 때문에 尹씨의 귀국 이유를 둘러싸고 현 정권의 역공작이라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당시 안기부 문건 등을 통해 '북풍' 공작의 혐의를 포착한 새 정부측에서 실체규명을 위해 그를 회유하거나 유인했다는 것이다.

안기부 개입 사실이 尹씨 구속 20일이 지난 후 불거져 나온 것이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때 사용된 '미끼' 는 尹씨가 받지못한 공작금 3만1천달러일 가능성이 크다.

또 이 과정에서 尹씨의 불안감을 덜기위해 안기부의 보호막이 건재한 것으로 믿게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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