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정국 권영해씨 파문]정가 소용돌이…집권초기 개혁 차질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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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권은 권영해 (權寧海) 전안기부장의 할복 (割腹) 소동배경을 여러갈래로 해석하며 파문의 확산을 조기 차단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정권출범 직후부터 몰아쳐온 북풍규명 드라이브가 정국파행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쪽으로 방향을 틀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權씨가 자살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굳이 검찰에 출두하지 않고 얼마든지 더 쉽고 확실한 방법으로 죽음을 택할 수 있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설사 출두후 뒤늦게 자살을 결심했다 하더라도 복부 대신 손목동맥을 그었다면 훨씬 치명적 결과를 가져왔을 것" 이라는 얘기도 한다.

여권은 이같은 분석속에 그의 행위가 상당한 파장을 노리고 면밀히 계획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당초 여권은 당혹해 하면서도 '북풍공작의 실체 규명을 어렵게 하기 위한 저항' 정도로 큰 의미를 두려하지 않았다.

수사진행 지연, 여권의 수사의지 위축, 북풍공작 담당기관 수장 (首長) 으로서의 책임감 표시 정도로 여겼다.

일각에선 "명색이 안기부장을 지냈다는 사람이 그래 연필 깎는 칼을 가지고…" 라거나 "동정심 유발을 위한 쇼" 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자 당혹감은 상당한 눈치다.

본질적으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과 그를 정점으로 한 새 집권세력에 대한 집단적 도전심리를 유발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국민회의 고위관계자는 "여론의 초점을 모은 상태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수구세력의 반발심리에 불을 붙이자는 뜻이 담겼을 수 있다" 고 단언했다.

權씨가 의도했든 안했든 결과적으로 기득권층의 결집을 부를 수 있다는 얘기다.

아직도 金대통령의 '색깔' 에 의문을 갖는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한 사상논쟁이 거세게 재현될 수 있다고 본다.

나아가 다시 영호남간 지역갈등이 초래되는 사태도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이는 '집권초기 과업' 에 차질이 올지 모른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따라서 여권은 단호한 대처로 해법을 찾으려하고 있다.

일단은 철저한 수사다.

정동영 (鄭東泳) 국민회의대변인은 "자해소동은 그것대로, 진상규명은 규명대로 에누리없이 파헤칠 것" 이라고 강조했다.

"국민 혈세 25만달러를 유용한 權씨의 DJ 낙선운동 배후에 한나라당이 있는지가 사태의 초점" 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전모가 드러나면 이번 일로 급격히 강경해진 한나라당의 공세가 먹혀들 여지가 적어지리라는 것이다.

정치적 공방으로 시간을 끌면 '이대성파일' 에 이어 여권의 부담이 그만큼 커진다는 계산도 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우려하는 점은 경제회생이라는 민생현안을 외면하고 있다는 여론에 부닥칠까 하는 점이다.

때문에 權전부장을 포함, 구 안기부 수뇌부에 대한 구속으로 일련의 수사를 조기 마무리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상태다.

진행중인 금융.재벌개혁 등 일련의 개혁작업을 부각시켜 민심을 싸안는 모습으로 시급히 복귀하겠다는 것이다.

김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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