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군사 주도권 잡아라" 미국·중국 힘겨루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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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동남아를 무대로 한 미국과 중국 간의 군사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다. 미국은 '미국 주도의 지역안보체제 구축'을 추진 중이고, 중국은 이에 맞서 다국 간 군사대화 채널 구축에 열심이다. 미국은 테러방지를, 중국은 지역 내 안보협력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내심은 상대방에 대한 견제와 군사적 주도권의 장악이다.

◇미국의 약진=일본 오키나와(沖繩)에 주둔하는 미 해병대는 지난 5월 초 태국에서 필리핀.싱가포르.몽골과 함께 '코브라골드'라는 암호명의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앞서 4월 말 전투 병력을 태운 미군 헬기들이 오키나와를 출발해 필리핀 서부 팔라완섬과 말레이시아 동부 보르네오섬, 싱가포르에서 차례로 급유를 받은 뒤 태국으로 이동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미군 병력의 보급 경로에 주목하고 있다. 미 해병대가 오키나와-필리핀-보르네오-싱가포르-콸라룸푸르를 거쳐 태국에 이르는, 일명 '동남아 에어브리지(SAAB.지도)'란 보급로를 개발한 것은 이미 2001년이다. 그러나 SAAB를 가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지난 2월 말 필리핀 최북단 바타네스섬에서 열린 미국-필리핀 간 '발리카탄 2004' 군사훈련은 주목거리였다. 기존의 합동훈련과는 달리 북부지역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바타네스섬 최북단에서 대만 남단까지의 거리는 불과 70km"라며 "'발리카탄 2004'는 대만 방위를 염두에 둔 군사작전"이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시아는 중요한 군사지역일 뿐 아니라 테러 취약지역"이라며 "아시아 지역에 대한 (군사적)관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대응=중국은 동남아를 무대로 한 미국의 군사훈련이 중국의 손발을 묶는 데 초점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뾰족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대신 중국은 지난 4월 한국.미국.일본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회원국들에 "아시아 내 군사적 교류에 참여하고 싶다"며 협조를 요청했다. 지난 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각국의 국방차관급으로 구성되는 '신안보대화체제'를 논의한 것도 중국 측 제의에 따른 것이다.

중국은 이 자리에서 ▶군사전략의 골격▶군 현대화와 기술혁신▶테러 대응책 등 거의 모든 군사 현안을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제안했다. 미국이 동남아 국가들과 비슷한 문제를 논의할 때 중국을 따돌리지 못하도록 미리 쐐기를 박은 셈이다.

박소영.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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