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대졸 초임 깎겠다” 선언 … 30대 그룹 가운데 8곳만 실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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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추적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고용 안정 차원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대졸 신입사원 초임 삭감이 대기업들의 복잡한 이해관계 등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경련은 올 2월 말 ‘고용 안정을 위한 경제계 발표문’을 통해 대졸 초임을 삭감하는 대신 신규·인턴 채용을 늘리는 일자리 나누기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본지가 최근 30대 그룹(공기업 제외)을 대상으로 대졸 초임 삭감 여부를 물어본 결과 “삭감했다”고 응답한 곳은 삼성·SK·LG·GS·STX·현대·동부·동국제강 등 8개뿐이다. 나머지 기업들은 거부하거나 주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자동차와 롯데·한진·KT·한화 등 13개 그룹은 대졸 초임 삭감 계획이 아예 없다고 밝혔다. 신입사원의 초임이 낮아지면 훌륭한 인재를 확보하기 힘들다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일부 기업은 노동조합과 합의하기 어려워 추진하기 곤란하다는 주장이다. 전경련 발표 이후 석 달이 다 됐는데도 검토 중이거나 미정이라고 답한 곳도 포스코 등 7곳에 이른다. 특히 대졸 초임 삭감을 주도했던 조석래 전경련 회장의 소유 기업인 효성그룹조차 미정이라고 응답했다. 2개 그룹은 답변을 거부했다. 더구나 대졸 초임을 삭감하기로 한 LG그룹과 동국제강 등 일부 대기업은 부작용이 많아 한시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LG그룹 관계자는 “대졸 초임 삭감을 올해까지만 단기적으로 운영할 것”이라며 “경기가 회복되면 이를 보전해 줄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 등 선진국의 대졸자 임금을 비교하면서 국내의 과도한 근로자 임금을 점차 낮춰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던 전경련의 당초 의도와는 딴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채용 담당자는 “사회적 약자인 대졸 신입사원의 희생만 강요한다는 비난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다”며 “전경련이 정부 정책과 보조를 맞춘다며 처음부터 무리하게 추진했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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