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35> 아버지의 이름으로 ④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귤은 추억이다. 감처럼 자기 집 마당에서 자라는 게 아니라서 더욱 그 냄새는 향기롭다. 반도의 땅에는 탱자밖에 자라지 않지만 내지(內地)에 가면, 그것이 맛있고 큰 감귤이 되어 아무 데서나 열린다고 했다. 식민지의 아이들이 일본을 ‘내지(內地)’라 하고 내 나라 땅을 ‘반도(半島)’라고 불렀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귤을 일본에 가져다준 사람이 신라의 왕손 다지마모리(田道間守)였다는 것이다. 한국말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못하게 하던 선생님들이 그렇게 가르쳤다. 옛날 일본에서는 귤나무나 꽃을 ‘다치바나(橘)’라 했는데 그것은 ‘다지마모리의 하나(꽃)’가 준 말이라는 것이다. 요새 쓰는 ‘미캉’이라는 말도 그것이 삼한(三韓)시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생긴 말이라고도 했다. 일본말로 읽으면 ‘삼한’은 ‘미강’이 된다.

그래서 창가(唱歌) 시간에는 군가 대신 ‘다지마모리의 노래’를 배웠다. 풍금소리에 맞춰 “가오리모 다카이 다치바나오….” 향기로운 귤을 가득 실은 배가 만 리의 먼 바다에서 돌아온다는 뜻이다. 그리고 2절은 돌아와 보니 귤을 구해 오라고 한 수인천황(垂仁天皇)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자들이 다지마모리에 집착했던 것은 단 한 가지, ‘신라의 왕손이 일본 천황의 명을 받들어 충성을 다했고 생전에 그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자 한을 품고 슬피 울다가 그 능 앞에서 순사(殉死)를 했다’는 스토리텔링을 이용해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선전하려 한 것이다.

창가 시간에 다지마모리를 노래한 아이들은 극장의 단체관람 시간에는 ‘기미토 보쿠(너와 나)’라는 리진샤쿠(李仁錫) 상등병의 영화를 보았다. 조선인 1호 지원병으로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장면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다지마모리의 이야기에서 신라의 역사가 강조되는 것처럼, 그 영화에서는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은 삼천궁녀의 백제 역사가 부가된다. 실제로 그 영화는 부여에서 촬영됐고, 평소에는 잘 부를 수 없었던 한국 대중가요들도 들려온다. 1300년 전 옛날이나 오늘 전쟁터에서 일어난 이야기나 일본의 역사에는 시차(時差)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쓴 당시의 역사는 단 두 마디로 줄일 수 있다. “천황폐하 만세!”다.

그런데 이따금 자랑스러운 ‘야스쿠니’ 신사의 영령들 유품에서 이상한 편지가 나온다. 그것은 여러 가족이 굶어죽게 생겼다는 생활고 이야기 끝에 네가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고 명예롭게 전사하기를 원한다는 사연이 적혀 있다. 그래야 그냥 죽는 것보다 은사금을 많이 받고 일가족을 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코앞에 일어난 일도 우리는 모른다. 매일 휴대전화를 사용하면서도 우리는 그 속에 어떤 장치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예 반도체의 그 복잡한 회로는 들여다볼 수도 없게 만들어져 있다. 모르며 사용하고, 몰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오늘의 전자제품들이다. 그것을 ‘블랙박스’라고 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는 그 속을 모르는 사람들과 직장에서 일을 하고 친구를 사귀고 결혼을 한다. 우리 운명을 좌우하는 지도자들을 뽑는다. 날이 갈수록 기계도 사람도 복잡해져서 블랙박스 효과는 점점 더 커진다.

역사는 블랙박스의 블랙박스다. 일본의 역사가 특히 그렇다. 일본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다지마모리의 역사 추리소설은 천일창의 신라 왕족과 일본의 수인천황 사이에 보물 칼을 둘러싼 원한관계가 그려져 있다. 다지마모리는 순사를 한 것이 아니라 복수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너의 죽음은 순사가 아니라 미담으로 왜곡 이용될 것이다.” 이것이 소설의 마지막 대화다. 리진샤쿠 아니 이인석은 왜 지원병이 되었는가. 왜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고 죽었는가. 진짜 동기도, 전사 장면도 깜깜한 역사의 블랙박스 안에 있다. 그러나 그러한 죽음의 이야기가 누구를 이롭게 하는지는 불을 보듯이 환하다. 항공기의 블랙박스는 그 말 때문에 검은색인 줄 아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 색은 찾기 쉬운 오렌지색 아니면 붉은색이다. 지원병이라는 말도 그렇지 않은가. 귤도, 다지마모리도, 리진샤쿠도, 그 많은 친일파 이야기도 역사의 블랙박스 안에 갇혀 있다. 친일을 단죄하는 것 이상으로, 그 친일의 허구를 만들어낸 일본 역사의 블랙박스를 깰 수 있는 추리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만약 추리소설을 덜 읽는 한국의 젊은이들이라면 앞으로 누가 이 블랙박스를 부숴 해독할 수 있을 것인가.

중앙일보 고문 이어령

※ 다음 회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입니다. joins.com/leeoyoung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