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무대 '텃새' 배우인생 10년 안석환…카멜레온 연기로 관객 사로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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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오랜만에 연극계에 남성스타 한명이 탄생했다.

바로 안석환 (39) 이다.

지난해 '남자충동' '고도를 기다리며' 로 전성기의 도래를 알리더니 올해들어서는 훨씬 정상질주에 가속도가 붙었다.

열성 팬 클럽이 생겨날 정도다.

현재 안석환의 출연작은 극단 산울림의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 (4월26일까지) 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탄 다리오 포 원작을 국내 초연 (90년) 연출자인 채윤일이 리바이벌한 무대다.

이 무대에서 안석환은 무려 1인5역의 카멜레온이 된다.

미치광이.경위.고등법원 수석판사.국립과학수사연구소 소장.교황청 주교. 저마다 성격이 다른 역할을 마치 '변신 로봇' 처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얄미울 만큼 능수능란하다.

배우는 '천의 얼굴' 을 가져야 한다고 했는데 안석환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극이 진행될수록 보다 고위직 인물로 바뀐다.

이것이 출세의 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변신의 도가 높아질수록 조작.엄폐된 공권력의 비리가 속속 마각을 드러낸다.

여기에 연극의 맛이 있다. "

안석환의 연기는 상급법원 판사인척 고문치사를 은폐하려던 경관을 물먹이는 장면에서 다연발 폭소탄을 동반하며 절정에 오른다.

이 순간 관객들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안석환 연기의 포로가 된다.

"국가로부터 '공인받은' 미치광이가 해박한 논리로 경찰을 조롱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이런 일은 연극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 아닌가.

이런 풍자 때문에 관객이 자지러지며 웃는가 보다. "

안석환은 전혀 웃길 것같지 않은 자칭 '잘 생긴 얼굴' 이다.

외모가 더스틴 호프먼을 닮아 '한국의 더스틴 호프먼' 으로 불린다.

그러나 안석환은 정작 외모가 아닌 연기자로서 그를 흠모한다.

"최근까지도 그 (더스틴 오프먼) 는 연극무대를 잊지 않고 매년 한편씩 '의무 출연' 을 했던 대배우다.

늘 고향을 생각하는 배우 정신이 존경스러웠다. "

단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안석환은 대학극 출신 배우세대의 거의 마지막 주자다.

연극영화과를 나온 젊은 후배들이 연극계를 휩쓰는 사이 벌써 불혹 (不惑) 을 앞둔 나이가 됐다.

지난 87년 연우무대로 데뷔, 배우인생 만10년을 맞았다.

다소 뒤늦게 찾아온 그의 전성기는 이제 숱한 수상경력으로 치장되기 시작했다.

'이 세상 끝' '남자충동' 으로 97.98년 2년연속 동아연극상 수상, 지난해는 또한 평론가와 연극인들이 뽑은 '최우수 연극인' 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연극외에 밖으로 나돈 경험이 별로 없어 유명세는 약하다.

지난해 영화 '넘버3' 에서 책읽는 깡패 '넘버1' 역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날 정도라도 했다.

"재주가 없으니 영원히 연극배우로 남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기회만 있으면 보다 형편이 좋은 곳으로 '철새이동' 하는 동료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항변을 그는 이렇게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이제 안석환은 이런 말을 시니컬하게 해도 될 만큼 우뚝 선 연극계의 중추로 컸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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