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준·이주호 파격적 사교육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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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었다는 사교육비 절감대책엔 파격적인 내용이 담겼다. 고교 내신을 절대평가로 한다거나 고1 내신을 대입에 반영하지 않겠다는 등 교과부 관료들이 금기시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교육개혁의 판도라 상자’ 격이다.

본지는 20일 이 같은 내용의 ‘인재 양성과 중산층 지키기를 위한 사교육비 절감 종합대책’ 보고서를 입수했다. 지난 4월 미래기획위와 교과부 핵심 관계자들이 논의한 내용을 미래기획위 산하 교육개혁TF팀이 정리한 것이다. 일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에게도 배포됐으며,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됐어야 할 보고서다.

그러나 심야 교습 금지 법제화를 언론에 터뜨린 곽 위원장의 월권(越權) 논란이 퍼지며 보고서 속 내용들은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정치권과 교육계에선 “사실상 물 건너간 대책”이란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언제든 불씨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두 사람이 이 대통령의 교육개혁 의지를 가장 잘 이해하는 핵심 정책 브레인이기 때문이다. 당장 한나라당에서 이날 “새 원내 지도부가 구성되면 사교육비 대책에 대해 재논의해야 한다. 이렇게 무산시킬 정책이 아니다”(남경필 의원)는 요구가 있었다.

①자율형 사립고는 ‘선(先)지원 후(後)추첨’으로=내년에 문을 열 자율형 사립고의 학생 선발 방식과 관련, 고교 입시 경쟁과 사교육비 증가를 가져오지 않도록 ‘선 지원-후 추첨’으로 뽑자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보고서는 “지원 자격의 제한이나 학생부 서류 심사, 지필고사가 없는 순수한 의미의 추첨 형식이 될 것”이라며 “우수 학생 선발에 몰입하는 게 아니라 학생의 다양한 창의력을 길러 주는 교육 경쟁에 전념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②대학 입시의 고1 내신 반영 금지=대입에서의 내신 반영비율은 기본적으로 대학에 맡기되 고1 때의 내신 성적은 입시에 반영하지 않도록 하자는 게 보고서의 내용이다. 중3 또는 고1 때부터 입시가 과열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논의 과정에서 이 차관을 제외한 교과부 관료 대부분은 “입시제도를 자주 바꾸는 게 좋지 않으며 고1 과정에 기초 공통 과목들이 포함돼 있어 곤란하다”며 반대 입장을 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③고교 내신은 절대평가로=보고서는 “서열 매기기 식인 현재의 획일적 9등급 상대평가 방식을 절대평가 방식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옆자리의 친구보다 더 잘해야만 입시에 유리하다는 상대평가 식 내신 경쟁이 사교육 수요를 증대시키고 있으니 이를 절대평가로 바꿔야 한다”는 설명이다. 절대평가를 도입할 경우 너도나도 성적을 후하게 주는 ‘성적 부풀리기’ 현상이 빚어질 우려가 있다. 보고서는 “전국 단위의 학업 성취도 평가 결과를 통해 대학들이 성적 부풀리기 사례를 가려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④공교육 확대 방안도=보고서는 “사교육 수요 억제 정책 못지않게 공교육 공급 확대정책도 중요하다”며 두 정책의 동시 추진을 주장했다. ▶덕성여중과 같이 사교육 없는 모범 학교 1000개 만들기 ▶교원평가제 조기 법제화를 통한 교육의 질 제고 ▶방과후 학습 프로그램의 다양화와 민간 위탁 운영 등이 포함됐다.

⑤‘학원 영업시간 제한’과 ‘특목고 입시의 중학교 내신 반영 금지’는 무산=보고서에 따르면 미래기획위와 교과부는 지난 4월 17일 협의에서 ‘학원 영업시간 제한’ 법제화에 합의했다. 보고서엔 ‘제한시간은 21시(1안) 또는 22시까지(2안) 중 택일’이라고 명시돼 있다. 당시 양측은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한 학원은 21시까지, 나머지는 22시까지’로 의견을 모았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보고서엔 특목고 입시에서 중학교 내신 성적 반영을 제외하자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지만 당정협의를 거치며 함께 제외됐다.

서승욱·선승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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