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성적인 사회를 위해…張교수 '시론'에 답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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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3월5일 내 글이 나간 후 폭언과 위협에 시달리면서 하버마스의 '이성적인 사회' 와 프롬의 '건전한 사회' 를 재음미해봤다.

이성적이고 건전한 사회로 가는 길이 험난하다는 생각을 했다.

때로 학자의 의견이 특정 시점, 특정 정치세력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않을 수도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것이 뒤바뀔 수도 있다.

학자는 이런 것을 고려하고 학문적 견해를 밝히는 것이 아니다.

학자가 정치인과 다른 점이다.

법학자는 공동체 질서와 정의를 세우기 위해 진실로 자기 연구분야에서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론적 자원을 동원해 이를 해결하는 데 진력할 뿐이다.

6일 단국대 장석권 (張錫權) 교수의 내 글에 대한 반론적 글을 잘 읽었다.

대저 학문공동체에서의 논의엔 규칙이 있다.

첫째, 학문적 논의엔 학문공동체에서 인정하는 개념과 용어를 사용할 것. 둘째, 학문적 주장에는 반드시 이론적 근거를 갖고 증명할 것. 셋째, 독창적 주장을 하는 경우에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 이전의 학문적 견해를 뒤집을 것. 반증 (反證) 의 문제다.

넷째, 논의의 핵심에 초점을 맞출 것. 다섯째, 주장에 논리적인 모순이 없을 것. 여섯째, 어떤 경우에도 이성적인 논의를 할 것. 張교수 주장의 오류를 지적한다.

첫째, 국회의 동의제도다.

헌법 제86조는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고 정하고 있다.

대통령이 누구를 국무총리로 지명할 것이냐는 대통령의 전권이지만 피지명자를 국회에 동의요청하는 것은 헌법적 의무다.

국회의 동의권 행사도 헌법상의 전권이고 의무다.

모두 실질적이고 법적인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간의 이런 견제와 균형은 헌법이 정한 권력분립의 내용이고 이를 위반하면 위헌이다.

張교수는 이런 국회의 권한을 "극히 형식적이며 제한적인 것" 이라고 했다.

근거를 제시하기 바란다.

이번 사태에서 대통령이 특정인을 국무총리로 지명하는 일에서부터 국회의 표결절차에 이르기까지 법적인 잘못이 없다.

정치적인 대립과 긴장, 다툼과 타협은 그것이 바로 정치다.

둘째, 張교수가 말하는 '헌법상 유고 (有故)' 의 개념과 의미다.

광복 이후 이 나라 헌법학자들의 연구에서 이런 개념을 사용한 예가 있는지 제시하고, 자신의 기발한 생각이라면 학계에서 학문적으로 증명하기 바란다.

학문은 마음대로 주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헌법상 유고' 라는 발상은 상황변화에 따라 언제나 헌법을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것이다.

셋째, 행정부 교체와 국회동의의 문제다.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교체는 행정부의 교체를 가능하게 한다.

우리 헌법은 그런 절차의 하나로 대통령에 의한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임명을 보장하고 있다.

국회의 동의를 얻지 못해 새로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을 교체하지 못하는 예외적 상황에서는 기존 행정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국회 동의를 얻는 길을 찾아 내각을 변경하게 된다.

이것이 정치력이고 리더십이다.

국회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고 해서 동의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법치주의와 권력분립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넷째, 헌법해석이다.

張교수는 헌법 제86조에 대해 종래 헌법학자 대다수가 인정해 온 해석을 폐쇄적이라고 몰아붙이고 자신의 독단적 주장을 '건전한 의미의 확대해석' 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해석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다섯째, 한정합헌의 개념이다.

張교수가 말하는 '한정합헌' 이라는 말은 이 논의와 관련없는 전혀 엉뚱한 말이다.

헌법재판소 판례를 보든지 헌법학자 누구에게나 물어 봐도 확인할 수 있다.

학자는 자신의 주장을 학회에서 학문적 논문으로 증명할 의무가 있다.

張교수는 '헌법이념' 이니 '기본정신' 이니 하는 말의 남발로 초점을 흐리지 말고 법학자와 법률가들이 모인 학회에서 제대로 된 논문을 놓고 나와 공식적인 학문적 토론을 할 것을 제안한다.

정종섭 〈건국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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