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청약시장에 ‘외지인’이 움직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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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아파트 시장에서 실수요와 투자를 가르는 잣대는 없다. 분양받아 입주할 의사가 있으면 실수요자, 그렇지 않으면 투자자로 분류한다. 최근 1~2년간 주택시장에서 ‘투자’라는 말이 사라졌다. 미분양이 넘치고 마이너스 프리미엄(분양가 이하로 떨어지는 것)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최근 인천 송도의 한 모델하우스에서 만난 김모(45·서울 광진구)씨는 “돈 좀 벌려고 왔다”고 말했다. 그가 노리는 것은 분양권 투자. 김씨는 실제로 13일 송도 더샾 하버뷰 II 아파트에 청약했다. 그는 “직장이 강남이어서 거주할 생각은 없다”며 “1~2년 후 되팔면 돈이 꽤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분양시장에 투자 수요가 돌아온 것일까. 최근 인천 청라·송도지구 분양에선 외지인 청약 비율이 높아졌다. 인천시 신현동의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방문객들이 상담하고 있다.

아파트 분양시장에 투자 수요가 살아나는 조짐이 보인다. 내 집 마련도 아니고 큰 집으로 갈아타려는 것도 아닌, 전매차익을 얻으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올 들어 각종 규제 완화로 투자 부담이 줄어든 데다 집값 상승세의 영향이다.

특히 외지인 청약 비율은 두드러지게 높아졌다. 13일 1순위에서 평균 60대 1로 마감된 송도 더샾 하버뷰 II(포스코건설) 청약자 3만69명 중 인천 이외 거주자는 41%인 1만2430명이다. 송도에서 1월 나온 같은 업체의 더샾 퍼스트월드의 외지인은 7%였다. 인천 청라지구에서 15일 1순위 평균 2.1대 1의 경쟁률을 보인 롯데캐슬 주상복합 신청자 1718명 중 외지인은 절반에 가까운 828명(48%)이었다. 2월 청라 웰카운티 청약 때(외지인 21%)보다 훨씬 늘어났다. 포스코건설 노형기 부장은 “프리미엄이 많이 붙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진 서울 투자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청라지구에선 보기 드문 현상도 나타났다. 주택 수요가 적은 중대형(전용 85㎡ 초과)이 중소형보다 더 높은 경쟁률을 나타낸 것이다. 한화건설 신완철 상무는 “전매 금지 기간이 1년으로, 중소형(3년)보다 일찍 팔 수 있다는 점이 투자자를 끌어들였다”고 추정했다. 대림산업과 코오롱건설이 최근 문을 연 인천 신현 e-편한세상·하늘채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청약 희망 상담자 11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34.5%가 ‘투자용’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매 제한이 없는 재개발·재건축 단지는 투자자들의 참여가 늘면서 분양권 거래가 활발해졌다. 3월 서울 1순위에서 7.3대 1의 경쟁률을 보인 용산구 효창파크 푸르지오 재개발 단지는 2개월 새 거래된 분양권이 70여 건이다. 일반분양이 133가구였던 점을 감안하면 한 가구가 두세 차례 전매됐더라도 절반 정도가 팔린 셈이다. 실거주보다는 투자 목적으로 청약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15일 당첨자를 발표한 서울 중구 래미안 신당2차(재개발)와 경기도 의왕시 래미안 에버하임(재건축)에서 분양권 매물이 나오고 있다. 의왕시 D공인 박모 사장은 “당첨자 발표일 이후 웃돈을 4000만원 정도 주면 팔겠다는 전화를 10여 통 받았다”며 “웃돈을 얼마 받을 수 있는지를 묻는 전화만 수십 통이었다”고 말했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투자자 입장에선 전매 제한이 완화돼 쉽게 분양권을 팔 수 있게 됐고 금리가 낮아 자금 마련도 쉬워졌다”며 “정부의 양도세 감면으로 시세차익 기대치는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투자 수요가 불어난 만큼 실수요자들의 당첨 기회는 줄어들고 있다. 경쟁률이 높아지면서 당첨 커트라인도 치솟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큰 주택형은 미달됐던 서울 재개발 단지의 최저 당첨 점수가 래미안 신당2차에서 37점까지 올랐다.

전문가들은 투자 수요 증가로 분양시장이 확 달아오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아직 주택시장이 본격적인 회복세에 접어들지는 않아 투자 수요가 입지 여건·가격 등에서 돈이 될 만한 곳에만 몰릴 것”이라며 “광교 신도시 등지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많이 쏠릴 것”이라고 말했다.

안장원·임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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