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자민당, 하토야마 바람 경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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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1야당 민주당의 새 대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가 거센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대표의 정치자금 스캔들로 민주당이 집권 자민당에 역전을 허용한 최근의 정치구도가 단숨에 뒤집혔다. 하토야마 취임 직후 실시된 언론사들의 각종 여론조사가 이를 잘 말해준다. 아사히(朝日)신문이 16~17일 이틀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38%, 자민당 25%로 격차가 13%포인트로 벌어졌다. 올초 자민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2배까지 달했던 민주당은 3월 초 오자와 전 대표 비서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체포되면서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을 묻는 여론조사에서도 34%를 얻은 하토야마 대표가 21%의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를 눌렀다. “중의원 선거에서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에도 민주당 30%(한달전 조사에서 24%), 자민당 23%(27%)로 뒤집어졌다.
하토야마 대표는 18일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기대감을 되찾았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민주당이 하나가 돼 늙은 자민당의 관료체질을 부수고 국민이 주역이 되는 정치를 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이에 그치지 않고 스캔들로 물러난 오자와 전 대표를 선거담당 대표대행 자리에 앉혔다. 그는 “오자와 전 대표의 탁월한 수완을 활용하기 위해 적합한 직책을 마련한 것”이라며 “잠시 비난여론도 있겠지만 반드시 사라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하토야마 대표는 아소 총리와의 국회 당수 토론으로 쐐기를 박겠다는 각오다. 그는 “관료 눈높이의 아소 정권과 시민 눈높이에 맞춘 하토야마 민주당의 차이를 보여줄 것”이라고 의욕을 나타냈다.

여론의 이 같은 변화에 집권 자민당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오자와 대표의 정치자금 스캔들로 민주당이 떠들썩했던 지난 두달여간 차곡차곡 쌓아올린 자민당 지지율이 하토야마 새 대표체제 출범 이후 하루만에 원점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자와가 물러난 자리에 2인자 하토야마가 앉는다면 승산이 있다”고 예상했던 자민당으로서는 적지 않은 충격이다.

자민당은 오자와 전 대표의 존재를 부각시키며 민주당의 ‘2중권력 체제’를 비난하고 나섰다. 오자와 전 대표가 불법정치자금 문제에 대한 명쾌한 설명책임을 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의 핵심요직을 맡아 당을 운영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자민당 간사장은 “민주당은 당수가 변했다지만 정권을 잡아본 적이 없는 초보”라며 “오자와 전 대표의 정치자금 스캔들에 대해서도 무엇이 잘못인지 아직 모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健夫)관방장관도 NHK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오자와 전 대표는 국민들에게 (스캔들에 대한) 해명을 하지 않았다”며 “이 점을 하토야마 대표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변화’를 기대했던 유권자들의 뿌리깊은 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최근 몇달간 자민당의 지지율이 오른 것은 민주당이 실축했기 때문이지 자민당이 잘한게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신종플루 등 국가 비상시국에 아소 총리의 최 측근인 고노이케 요시타다(鴻池祥肇) 관방 부장관이 스캔들에 연루돼 사임하는 사건도 자민당의 발목을 잡았다. 고노이케 부장관은 지난달 말 연휴를 이용해 알고 지내는 여성과 개인여행을 다녀오면서 국회의원 공무용으로 지급되는 철도 무료승차권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12일 일신상의 이유로 사표를 제출했고, 아소 총리는 즉각 이를 수리했으나 비난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아소 내각에서는 앞서 나카야마 나리아키(中山成彬) 국토교통상이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채 일본교직원노조 등을 매도했다가 여론의 포화를 받고 사임했고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재무ㆍ금융상은 2월 외국에서 취중 기자회견으로 물러난 바 있다.

자민당은 선거일정을 놓고 저울질 하고 있다.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다보니 총선시기가 늦어질수 밖에 없다. 가장 유력한 선거일은 8월9일이다. 7월 초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와 도쿄도 의회 선거를 마무리한 뒤 7월 말 해산, 8월초 선거를 치르는 시나리오다. 그 사이 아소 정권은 경기부양책을 비롯한 경제와 외교정책의 성과를 확실히 제시해야 한다. ‘하토야마 돌풍’이 자민당의 기대와는 달리 장기화될 경우엔 8월말, 9월10일 중의원 임기 만료직전까지 총선이 늦어질수도 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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