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의 허와실]무역흑자 알고보면 '헛배'…수입격감에 수치만 반짝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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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월간 무역흑자 최대규모' '연속 4개월 흑자 달성' '안정적 흑자기조 구축. ' 2일 산업자원부가 내놓은 2월중 수출입 동향은 외견상 환율상승이 수출증대로 이어지면서 '달러 벌어 외채갚기' 에 청신호가 켜진 것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속 사정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단적으로 말해 우리 수출은 아직 환율상승의 호기 (好機) 를 제대로 못살리고 있는 상태다.

특히 원자재와 자본재 수입이 대폭 줄어든 점은, 앞으로 생산에 차질을 초래해 중장기적으로 수출 확충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 기형적인 흑자구조 = 연이은 무역흑자는 수출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 아니라 수입이 급격히 줄어든 기형적인 상태로 이루어졌다.

실제로 1월 수출은 '금 수출' 을 빼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5~6% 줄었다.

2월 역시 금 수출.설 연휴등의 요인을 제외하면 증가율은 5.4%에 머물렀다.

'사상 최대 흑자' 에는 상당히 거품에 끼어 있는 셈이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증대 효과는 올해 중반께 본격화 될 것" 이라며 낙관하고 있으나 그 효과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란 지적이다.

반면 수입감소는 우려할만한 수준이다.

수입은 1월중 40%, 2월중 30%가 각각 줄었다.

더욱 걱정은 감소분에는 생산활동에 필요한 원자재와 자본재가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환율상승 효과가 나타날 때가 되도 원자재가 없어 물건을 제대로 못만드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기다 ▶소비.투자위축에 따른 수요감소 ▶수입신용장 개설기피등 금융상의 애로 ▶환율상승에 의한 수입업체의 환차손등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 호기 못살리는 수출 = 내수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밀어내기식 수출때문에 환율 상승의 효과가 반감하고 있다.

자동차.철강.시멘트등의 업종에서는 수출 물량증가에도 불구하고 단가인하 때문에 채산성이 기대만큼 나아지지 않고 있으며 유화.선박등은 국내 업체들간의 밀어내기 경쟁에 가격이 크게 떨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온기운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당장 수출을 늘리기 위해 값을 깎아주다 보면 나중에 회복하는데 무척 애를 먹게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업체 입장에선 단가인하 요구를 거부할 경우 바이어들이 이탈할 소지가 있어 진퇴양난이라는 것. 수출환어음 할인 정상화도 더뎌 수출업체들이 애를 먹고있다.

일람불 신용장은 원상태로 돌아왔으나 인도.인수조건부환어음 (D/A) 나 유전스 (기한부환어음) 등은 여전히 할인이 안되는 실정이다.

각종 수출입금융 금리인상과 외환수수료 인상도 수출업계의 채산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행정공백을 틈타 은행의 수출금융시스템이 더 빡빡해져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고 지적했다.

◇ 어려워지는 수출 여건 = 동남아 지역의 외환위기는 우리 수출품에 대한 수요격감과 동남아 경쟁업체들의 덤핑공세라는 이중고를 안겨주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중반 7%대에 달하던 아세안 지역에 대한 수출증가세가 올 1월에는 35% 감소로 돌아섰다.

또 미국.유럽은 물론 중남미에서까지 우리 수출총력전에 대한 견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수출전선에 또 다른 복병이 되고 있다.

박영수·이재훈·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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