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북핵 방황을 끝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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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닥칠 일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닥치고야 만다.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없다. 북한은 핵 보유를 선언했고 이를 증명할 핵실험만 남았다. 핵실험을 하면 세계는 싫어도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공인할 수밖에 없다. 이제 남은 것은 북한의 핵실험을 방치할 것이냐, 아니면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막을 것이냐다. 우리로서는 핵을 가진 북한과 같이 살 것인지, 아닌지를 결심할 때가 온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선을 넘으면 유엔 안보리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는 아직 애매하다. '북의 핵 보유는 안 되지만 안보리도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상황은 더 이상 우리의 방황을 용납하지 않는다. 분명한 태도 표명을 해야 할 때가 임박했다.

북핵 협상은 사실상 실패했다. 나는 그 실패에 한국 탓이 크다고 본다. 협상에는 협상 당사자가 있다. 당연히 우리의 대상은 북한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 행태를 보면 그 대상이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북한의 핵 개발을 막으려면 북한에 할 말을 해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강경하게 나가면 북한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며 미국을 말리곤 했다. 우리가 북한 대리인이 되어 미국과 협상한 꼴이다. 물론 미국보다 우리가 북한을 더 잘 아니 미국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솔직해지자. 이 정부는 북핵을 제거하려는 미국을 말렸는가, 아니면 핵 보유로 달려가는 북한을 말렸는가. 같은 팀이 되어 싸워도 어려운 게임인데 한국이 이런 태도로 나오니 미국은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협상을 하자면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왜, 무엇을 위해 협상하느냐가 분명해야 한다. 한국은 이 목표가 분명하지 않았다. '북핵은 안 된다'는 분명한 목표가 우리 정부에는 없었다.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해도 "경협은 계속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분명한 목표가 없는데 협상이 될 수 있는가. 이미 일각에서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 사실화하려는 논의가 일고 있다. "북한이 핵을 가져봐야 우리한테 쓰겠는가" "핵을 가진 북한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북한이 핵 보유국으로 확인됐을 경우를 상상해 보라. 우리는 앞으로 영원히 북한의 요구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안보에 관한 한 북한에 목숨 줄을 내놓고 살아야 한다. 보수와 진보, 반미와 친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앞선 경제력으로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다 해도 재래식 무기는 결코 북한의 핵무기와는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없다. 균형이 무너진 곳에서는 힘센 자의 횡포만 있을 뿐이다.

협상에는 카드가 중요하다. 상대방이 무서워하는 카드를 써야 한다. 그런 카드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야 협상에서 이긴다. 저쪽이 핵무기를 만든다고 할 때 "그렇다면 우리도 죽음을 각오하고 막을 수밖에 없다"고 해야 협상이 되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로 가면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는 위협에 아예 안보리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다. 남쪽은 전쟁 위협만 하면 꼼짝 못한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우리 약점을 아는데 우리 말을 듣겠는가. 협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평화적 수단과 강제적 수단 모두 쓸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평화적 수단만을 되뇌니 처음부터 한쪽 손발을 묶고 싸우는 꼴이다. 죽기 살기로 나오는 상대에게 평화를 외친들 저쪽이 말을 듣는가.

지금 급한 것은 북한의 핵을 막는 것이다. 전쟁의 위기가 코앞에 닥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부는 생뚱맞은 얘기만 한다. 대통령은 동북아 균형자 노릇을 하겠다고 나서고, 국방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중.러와 군사훈련을 같이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눈앞에 닥친 위기에는 눈을 감고 동북아 타령을 하고 있으니 북한의 위협에 대한 국민의 분별력을 마비시키고자 하는 것인가.

더 이상 해찰을 부릴 시간이 없다. 우리가 분명한 입장으로 나가지 않으면 북한 핵무장은 기정사실화한다.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분명히 핵 제거다. 핵을 가진 북한과 더불어 지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의 협상 대상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다. 한.미.일이 분명히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핵을 막는 것이라면 어떤 수단이든 쓸 각오를 해야 한다. 카드에는 성역이 없다. 우리가 이런 자세로만 나간다면 분명히 협상에서 성공할 것이다. 북한이 핵을 고집하면 유엔 안보리 제재밖에는 길이 없다는 점을 미국이 아니라 우리 정부가 먼저 말해야 한다.

문창극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