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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 옥죄는 사립학교법 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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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 교육에서 사립학교의 비중은 엄청나다. 학교 수를 기준으로 2003년 현재 초등학교는 1.3%, 중학교는 23.5%에 불과하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46%, 전문대학은 89.9%, 대학은 78.9%나 된다. 학생 수로 따져 보면 고교는 55%, 전문대는 96%, 대학은 78%가 사립학교에 재학 중이다. 인재양성을 통해 국가사회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조선조 말 관학보다 먼저 설립된 사립학교는 서구식 현대교육을 실시, 민중계몽에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일제 때는 탄압에 저항하는 민족 정기를 고취하는 데 앞장섰다. 광복 이후에는 급증하는 학생의 대부분을 수용함으로써 빈약한 정부 재정으로는 불가능했던 국민의 교육열 해소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긍정적인 측면 못지않게 그늘진 구석도 적지 않다. 양적인 팽창 과정에서 일부 사립학교는 공적인 기능과 건전성을 망각한다. 비리의 늪에 빠져들면서 공신력을 잃고 부패의 온상이라는 지탄을 받게 된다. 대표적인 부조리는 설립자의 전횡적인 학교 운영이다. 혈족 위주의 재단이사회 구성과 족벌 경영, 학교 예산의 유용과 전용, 교원 임용과 인사와 관련한 금품수수, 부정입학 등 낯 뜨거운 탈법과 불법이 난무한다. 결국에는 학내 분규를 야기하면서 수업결손 발생은 예사고, 심한 경우는 관선이사가 파견되는 진통 끝에 설립자는 쫓겨나기도 한다.

지금도 12개 대학과 5개 전문대, 5개 중.고교가 분규 중이다. 이 가운데 상황이 심각해 기존의 이사진이 물러나고 임시이사가 선임된 대학은 9곳, 전문대는 5곳이다. 사립학교 전체 규모에 비하면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여전히 대다수 사립학교는 나름대로의 건학이념을 실천하고자 성실하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교수들은 연구에 매진한다. 건전한 사립학교는 자율성을 갖고 학교를 운영하도록 정부와 사회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사립학교의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사립학교 지배.경영 구조의 변경을 시도하고 있어 매우 걱정스럽다. 교육인적자원부와 대통령 직속 교육혁신위원회, 열린우리당은 사학의 책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립학교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법인이 아닌 학교장에게 교직원 임면권 부여, 비리 관련자의 복귀 제한, 이사회의 친인척 비율 축소가 핵심 내용이다. 전교조를 필두로 44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민주적 사립학교법 개정과 부패사학 척결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는 아예 사립학교 설립에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은 사람을 이사로 선임하는 공익이사제 도입을 주장한다.

사립학교법은 사립학교의 설립과 발전을 촉진하는 근거를 담고 있어야 한다. 사립학교에 자율성과 권한을 부여하고 동시에 철저하게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부', '극소수'부실 사립학교를 징벌하기 위한 명목의 사립학교법 강화는 규제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나친 규제는 사립학교 운영자의 의욕과 사기를 떨어뜨리고 신규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비난받는 몇몇 사립학교 때문에 국.공립학교와는 달리 경영주체가 민간인 모든 사립학교 법인에 공영이사제를 적용한다면 이는 사유재산권 박탈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오죽하면 사립 중.고.전문대.대학의 연합체인 한국사학법인협의회가 "사립학교의 존립을 뿌리째 뒤흔드는 조치"라고 반발하겠는가. 경제특구에 한정된 것이지만 외국자본의 사립학교 신설을 허용하는 마당에 국내 사립학교의 손발을 동여매는 정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학내.외 구성원으로부터 불신을 받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립학교는 교육부가 엄중하게 관리.감독하고 사법처리하면 된다. 삐뚤어진 뿔을 바로잡으려다가 소까지 죽일 순 없다.

도성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