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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만 건너면 강남 … 월세는 반값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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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호 26면

서울 성수동 준공업지역이 ‘S밸리’로 부상하고 있다. 불황에 견디다 못해 이곳으로 사무실을 옮기는 강남권 중소·벤처기업이 눈에 띄게 늘었다. 새싹공인중개 김성혜 대표는 “강남에는 빈 오피스가 많아졌으나 성수동의 사무실이나 아파트형 공장은 오히려 임대·매매 문의가 늘었다”고 말했다. 덩달아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형 공장도 인기다. 지난해 5월 뚝섬역 부근 코오롱 서울숲 디지털 타워 1차가 분양 하루 만에 마감하면서 아파트형 공장 붐이 일기 시작했다. 이 일대에는 코오롱2~3차·한라시스마밸리·한진마크밸리·일신휴먼테크 등 아파트형 공장이 줄줄이 들어설 예정이다.

중소기업의 메카로 뜨는 성수동 ‘S밸리’

성수동의 사무실 수요가 급증한 데는 싼 임대료가 한몫했다. 미래에셋·부동산114에 따르면 1분기 성동구(성수동 포함) 아파트형 공장 3.3㎡(1평)당 월평균 임대료는 3만3000원이다. 영등포구나 구로구보다 낮다. 강남권(KBD) 오피스의 3.3㎡당 월 임대료는 7만1000원이다. 성동구 아파트형 공장보다 배 이상 비싸다.

강남권 공실률은 지난해 4분기 2.2%에서 1분기 6.3%로 석 달 만에 4.1%포인트나 급등했다. 불황기를 맞아 ‘탈(脫)강남’ 현상이 두드러진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이들이 주로 강남과 가깝고 임대료가 싼 성수동, 강남의 70~80% 수준 임대료로 사무실을 구할 수 있는 분당권으로 이주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둘 다 임대료가 오르거나, 공실률이 올라가지 않은 곳이다. 성수동의 매력은 강남 월세 값 정도로 사무실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회사 돈 1억5000만원에 2억5000만원을 대출받아 성수동 아파트형 공장을 산 업체도 있다”며 “이 업체의 경우 한 달에 갚는 원리금이 강남 월세의 절반인 20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한신아크밸리 지철민 본부장은 서초동 보안설비업체 A사의 상담 사례를 공개했다. A사는 현재 공급면적 1000㎡ 규모의 사무실을 보증금 2억5000만원, 월세 2000만원에 사용하고 있다. 성수동에서 비슷한 규모의 아파트형 공장을 사려면 대략 30억원이 들어간다. 월세 보증금에다 6억5000만원을 보태고, 나머지 21억원을 정책자금(연 5%)으로 대출받으면 A사는 연간 1억500만원의 이자만 부담하고 사무실을 소유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강남 월세 1년치 2억4000만원의 반이면 된다는 얘기다.

성수역 동쪽에 산업뉴타운
성수동 행렬은 탈공업화와 함께 기존 공업지역이 신(新)산업공간으로 재편되는 과정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구로공단은 이미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개편돼 정보기술(IT) 관련 제조업과 서비스업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이와 유사하게 성수동에서는 최근 아파트형 공장 등의 공급이 급증했다. 아파트형 공장을 직접 매입하는 기업의 경우 대부분 ‘앞으로 뜰 곳’이라는 계산도 하고 있다. 가장 큰 호재는 서울시의 ‘개발 의지’다. 준공업지역뿐 아니라 주변 지역까지 통째로 정비하겠다는 게 서울시 구상이다.

준공업지역 내 성수역 동쪽 79만여㎡(산업기능 우세지역 3, 6블록)는 서울시가 ‘산업뉴타운’으로 지정해 ‘IT·BT 첨단산업단지’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전체 성수동 준공업지역의 3분의 1이 넘는 규모다. 이곳은 아파트형 공장 18개, 등록공장 1000개를 포함해 2000여 개의 공장과 벤처기업 등 150개 첨단산업이 섞여 있다. 그러나 공동주택이 무분별하게 들어서고, 소규모 영세 공장의 노후화로 산업환경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서울시와 성동구청은 이 일대를 국토계획법상 ‘산업개발진흥지구’로 지정할 예정이다. 지구 지정이 완료되면 각종 개발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지구 내 권장업종 용도의 산업시설의 경우 건폐율은 해당 지역 건폐율의 117~150% 이내, 용적률은 해당 용도지역 용적률의 120% 이내, 높이는 제한 높이의 120% 이내로 완화될 예정이다. 취득·등록세는 면제되고 재산세 역시 5년간 50% 감면된다. 이곳에는 최근 “물건이 어떤 게 있느냐”는 문의가 늘었다. 최근 한 달 새 4~5건의 매매가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공장 부지이다 보니 거래 금액이 커 450㎡대 부지가 35억원, 330㎡ 부지가 25억원에 거래됐다.
 
전략정비구역 조합원 적은 게 매력
준공업지역 남쪽에 위치한 한강변 일대, 즉 서울숲에서 영동대교 북단 사이 한강변을 따라 들어서 있는 노후 단독·다세대주택, 근린상가 밀집지역은 최고 50층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 단지로 개발될 전망이다. ‘한강 공공성 회복선언’ 프로젝트에서 압구정·이촌·여의도·합정과 함께 5대 ‘전략정비구역’으로 선정된 지역이다.

초고층 허용 소식에 가장 먼저 반응이 온 곳은 한강변을 바라보고 있는 ‘나 홀로’ 아파트들이었다. 강변임광·강변현대·한강한신 등의 소형 아파트 값은 지난해 말보다 1억원가량 올랐다. 소형 아파트가 급등한 것은 다세대·연립주택에 비해 전세가가 높아 투자금이 적게 드는 데다 이들 단지가 당초 허물지 않는 존치지구에서 허무는 개발지역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솔공인중개 여횡호 대표는 “한 달 새 50~60건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며 “가격이 급등하는 바람에 지금은 숨 고르기를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난달 둘째 주에는 하루 100통도 넘는 문의 전화가 몰릴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가격이 급등하면서 매물은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다. 여 대표는 “기존 매물은 거의 모두 들어갔고, 물건이 나오기만 기다리는 대기자만 10여 명”이라고 귀띔했다.

이곳에 지금 투자해도 늦지 않을까. “대체로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조합원 수가 4000~4500명에 불과한 게 가장 큰 매력이라는 것이다. 개발 예정지에 1만~1만2000가구가 세워진다고 볼 때 일반 분양분이 많아 조합원 부담이 덜하다는 얘기다. 서울숲과 인접한 1구역은 2·3·4구역보다 인기가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값이 많이 오른 소형 아파트보다는 대지 지분이 큰 주택가를 둘러볼 것을 권했다. 대지 지분을 기준으로 148㎡(45평)가 10억원, 162㎡(49평)가 11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 정도면 나중에 231㎡(70평)대 아파트를 분양받아 시가 20억원이 넘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보유 토지의 25%를 내놓아야 한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준공업지역 서쪽 삼표레미콘 부지는 현대자동차그룹의 100층 이상 빌딩이, 강남과 직결되는 분당선 연장 구간 ‘신성수역(가칭)’ 일대는 역세권 주상복합 및 상업시설이 세워질 전망이다. 서울숲힐스테이트공인중개 정선동 대표는 “도심 재생 프로젝트의 본보기이자 서울의 ‘롯폰기 힐’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성수동 일대의 개발 시나리오는 10년 전부터 흘러나왔다. 주민 김모(62·성수2가 1동)씨는 “수년 전부터 뉴타운 예정지다 뭐다 해서 개발 바람이 불다 말았는데 이번에는 확실한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있다”며 “단독·다가구주택이 많은데, 어지간해서는 집을 내놓지 않고 있고 나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바로 이 같은 부푼 기대가 걸림돌이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기대 수준이 워낙 높아 토지 소유자와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도로망 등 교통 인프라 확충도 시급한 과제다. 주민들은 지상으로 노출된 전철을 지하화하기를 원하지만 서울시는 천문학적 비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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