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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소녀+전사 전지현의 도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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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호 05면

남자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전지현(28)의 에로틱한 입술을 상상했다면 안 된 소식이지만 영화 ‘블러드(원제 Blood:The Last Vampire)’에서 전지현은 ‘뱀파이어 아닌 뱀파이어’다. 인간 아버지와 뱀파이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뱀파이어로서, 그녀는 인간들 틈에 끼어 사는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역할을 한다. 뱀파이어의 본성상 피를 갈구하지만 그것은 흡혈의 대상이 아니라 살육의 결과물로서 흩뿌려질 뿐이다. 일용할 피는 ‘박쥐’의 상현(송강호 분)처럼 휴대용 깡통으로 해결한다.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절대 자신의 동물적인 감성을 깨우고 싶지 않은, 그래서 아프고 혼란스러운 인물”이 전지현이 설명하는 ‘뱀파이어 헌터’ 사야다.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혼혈 뱀파이어
‘스타일 아이콘’ 전지현이 생애 첫 원톱 주연을 맡아 관심을 모으고 있는 ‘블러드’는 최근의 뱀파이어 트렌드를 잇는 영화다. 주인공 사야는 ‘렛미인’의 소녀처럼 직접적인 흡혈을 꺼리며, ‘트와일라잇’의 주인공들처럼 또래 10대 속에 섞여 살아간다. 다른 점은 사야가 400년의 긴 세월 동안 ‘뱀파이어 처단’의 임무를 부여받고 살아왔다는 것, 그리고 그 무기가 사무라이풍의 장검이라는 것이다. 평범한 외모에 신들린 검술만이 초인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셈이다.

이 점이 전지현을 매혹시킨 듯했다. 11일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났을 때 그녀는 인터뷰 내내 ‘액션’을 강조했다. 특히 앞서 제작된 동명 애니메이션의 반향이 큰 것 같았다. “캐스팅 제의를 받고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첫눈에 반했어요. 사야의 신비로운 분위기도 그렇고, 날아다니며 긴 칼을 휘두르는 모습도 굉장하고요. 독특하면서 강해 보였어요.”

영화 ‘블러드’는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2000년대 초반 발표한 ‘블러드 프로젝트’의 일부다. 사야라는 소녀 뱀파이어를 중심으로 소설ㆍ애니ㆍ게임 등을 제작하는 것이었는데 먼저 극장판 애니 ‘블러드:더 라스트 뱀파이어’가 나왔고 이어 오시이 감독이 직접 소설 ‘야수의 밤’을 썼다.

애니메이션이 전지현을 매혹시켰다면, 전지현도 원작자 오시이 감독을 매료시켰다. 오시이 감독은 최근 시사본을 보고 “사야 역을 할 사람은 전 세계에서 전지현뿐”이라고 흡족해했다고 한다. 이 점은 홍콩 출신의 세계적 제작자 빌 콩도 마찬가지여서 평소 전지현의 팬으로 알려진 그는 제작 첫 단계부터 강력히 전지현을 캐스팅할 것을 고집했다.

결과적으로 ‘블러드’는 굉장히 스타일리시한 뱀파이어물이 될 듯하다. 최근 공개된 메이킹 필름에서 전지현은 세일러 교복을 입은 채 길게 땋은 머리를 휘날리며 고공 점프와 180도 돌려차기를 선보였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빗속에서 통곡하는 장면에서도 처절한 비극미가 두드러졌다. 청순과 고혹이 공존하는 전지현 특유의 섹시함이 ‘뱀파이어 여전사’ 이미지로 수렴된 것이다.

첫 해외 진출작서 연기 변신
엉뚱 엽기녀와 트렌디한 CF 스타 이미지가 강했던 그가 ‘액션 여전사’로 변신하게 된 것은, 이것이 첫 해외 진출작이라는 점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일본·프랑스·홍콩 자본이 합작한 ‘블러드’는 다국적 출연진에 영어 대사로 이뤄졌다.
“해외 진출을 늘 꿈꿔 왔는데 아시아인으로서 언어 문제가 있잖아요. 액션 영화라면 몸으로 풀어낼 수 있으니 해 볼 만하겠다 싶었죠.”

그러나 LA와 중국을 오가는 3개월여 트레이닝 동안 그것은 ‘오판’으로 드러났다.
“차라리 트레이닝 때가 쉬웠죠. 실제 촬영 땐 정말 말도 못 해요. 가장 긴 액션 장면은 한 달 내 밤새 비 맞으며 찍었어요. 오죽하면 스태프들에게 ‘사람은 간사해 곧 잊어버리니까 나중에 내가 액션 또 한다고 하면 제발 말려 달라’는 말까지 했겠어요.”

그래도 ‘트랜스포터’의 무술 감독 위안쿠이(元奎)가 코치였다는 점은 행운이었다. 액션 배우 아닌 사람을 액션 배우로 만드는 장기가 있는 위안쿠이 감독은 전지현의 액션을 섬세하게 그려 갔다. 크리스 나흔 감독을 비롯한 해외 스태프와 일한 경험도 잊지 못할 수확이다.

“거기선 아무도 저를 몰랐어요. 프랑스 출신 감독님도 그렇고, 누가 저를 알겠어요. 그런데 그게 편안했어요. 나에 대한 이미지·편견이 없다는 것. 그래서 새롭게 도전할 수 있었던 거죠.”

동서양 퓨전물 글로벌 개봉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일 미군 내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여러 면에서 퓨전이다. 뱀파이어라는 서양 캐릭터에 동양식 검술이 버무려진 것이 그렇고, 혼혈 뱀파이어가 인간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설정도 홍콩 무협물의 복수 구조를 따른다.

‘공각기동대’에서부터 인간의 본성을 심오하게 질문해 온 오시이 감독은 소설에서도 뱀파이어와 다르지 않은 인간의 잔혹함을 문제 제기한다. 하지만 영화가 이런 반전(反戰)의식을 얼마나 담아낼지는 미지수다. 인간과 뱀파이어의 드라마틱한 대결에 집중했던 애니메이션을 스크린에 옮기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나저러나 피(blood)는 뱀파이어물 특유의 ‘잔혹 미학’으로 스크린을 장식할 전망이다.

제작비 3500만 달러를 들여 중국ㆍ아르헨티나 등을 오가며 제작된 ‘블러드’는 5월 29일 일본을 시작으로 유럽ㆍ미국 등에서 개봉된다. 국내 개봉은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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