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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진홍의 소프트 파워

소록도의 우체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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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전남 고흥반도 끝자락의 녹동항에서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작은 섬이 있다. 면적은 여의도의 약 1.5배 크기. 섬 모양이 어린 사슴을 닮았다. 지난 3월 초 이 섬을 육지와 잇는 다리도 완공됐다. 하지만 사람들에겐 여전히 섬으로, 그것도 마음속의 단절된 섬으로 남아 있는 곳. 바로 소록도(小鹿島)다.

#1916년 5월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해 ‘소록도 자혜의원’이 설립됐다. 그후 작은 사슴의 섬 소록도는 문둥병·나병이라 불리던 한센병 환자들의 집단 수용소가 됐다. ‘모던일본’ 조선판 1940년 8월호에 실린 ‘조선의 어느 작은 섬의 봄’이란 제목의 르포에서 소록도는 소박한 지상낙원처럼 묘사됐다. “육지에서 흰 쌀밥을 보기 어렵다고 할 때도 이 섬 정미소에서는 벼를 찧어 자급자족하니 백미를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일제시대 때 ‘이동’이란 이름의 한센인이 감금실에 끌려가 강제로 단종대(斷種臺)에 뉘어졌다. 그 단종대에서 말 그대로 씨를 끊는 수술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시 한 편을 남겼다.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사랑의 꿈은 깨어지고/여기 나의 25세 젊음을/파멸해가는 수술대 위에서/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있노라/장래 손자를 보겠다는 어머니의 모습/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내 국부에 닿을 때/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오늘도 통곡한다”

#소록도는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풍광마저도 고스란히 상처의 흔적들이다. 편백나무, 삼나무, 팔손이나무, 치자나무 등으로 잘 조성되고 가꾸어진 중앙공원의 숲과 융단처럼 깔린 잔디엔 한센인들의 피, 땀, 눈물, 분노, 그리움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소록도 주민들의 평균 연령은 73세다. 임인년(1902년)생의 한 할아버지는 17세에 소록도에 들어와 103세가 넘게 살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살수록 그들에겐 그것이 더 천형처럼 여겨졌으리라. 소록도에는 현재 환자 617명, 병원 직원 191명, 자원봉사자 약 20명이 함께 거주하고 있다.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보살펴온 마리안, 마가레트 두 수녀가 편지 한 장을 남기고 홀연히 떠난 것은 지난 2007년 3월 21일이었다. 마리안 수녀는 1959년에, 마가레트 수녀는 1962년에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다. 두 수녀는 장갑도 끼지 않고 환자들을 돌봤다.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 수술을 하고 한센인 자녀를 위한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정착 사업에 헌신했다. 본국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성한 몸이 돼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로 나눠줬다. 그 사이 꽃다운 20대의 수녀는 일흔 살 넘은 할머니가 됐다. 두 수녀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 한 개만 든 채 이른 새벽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조용히 떠났다. 편지에는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우리가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얘기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는 말만 남겼다. 두 수녀는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향기는 여전히 소록도에 남아 있다.

#충남 천안에 있는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우정박물관 소장 사료 중에는 광복 직후 사용됐던 ‘소록우체국 우체통’이 있다. 소록도의 우체통은 세상과 소록도의 마음을 잇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거기엔 사람을 그리워하는 한센인들의 애환이 두텁게 묻어 있다. 오늘 소록도에서 국립 소록도병원 개원 93주년 기념행사와 제6회 전국 한센가족의 날 행사가 열린다. 정부를 대표해 한승수 총리도 참석한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한센인에 대한 우리 생각의 편견을 벗고 그들과 소통하는 마음의 우체통을 다시 여는 일이 아닐까?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