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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빈 칼럼]세계화의 덫, 3金의 덫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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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금 우리는 두개의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 이라는 '세계화의 덫' 이 목을 누르고 '3金의 덫' 이 발목을 잡고 있다.

나는 어제 밤늦게까지 독일 슈피겔지 편집위원이었던 마르틴과 슈만이 쓴 '세계화의 덫' (강수돌 역) 이라는 책을 읽고 이른 아침 조간신문에서 'JP총리 인준 무산' 이라는 3金시대의 족쇄를 확인하고 있다.

한권의 책이 주는 정보량과 충격이 이토록 클 수 있나 할 만큼 '세계화의 덫' 은 우리가 어떤 덫에 걸려 있나를 설득력있게 알려준다.

지금 세계는 '20대 80의 사회' 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20%에 해당하는 나라들이 세계 전체 부와 무역량.저축액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의 지력 (知力) 이 80%의 일자리를 없애버린다.

노동의 종말이 현실화되고 있다.

20%의 부와 지력을 움직이는 세력이 누구인가.

국적도 없고 실체도 보이지 않으며 빛과 같이 움직이는 이윤사냥꾼이다.

전자장비로 무장된 군대처럼 24시간 내내 수익성 높은 곳을 찾아 온 지구를 몇바퀴씩 찾아 헤매는 직업적 금융 투기꾼들이다.

스티브 트렌트. 헤지펀드를 이끄는 대표적 금융사업가.

그는 백악관 건물을 장난감처럼 낮게 내려다보는 거대한 건물의 오벌 오피스에 앉아 한마디 지시로 수초 사이에 수십억달러의 돈을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카리브해 연안의 케이맨 제도 (諸島) 에 무국적 금융기지가 5백개 자리잡고 세계의 돈을 요리한다.

범지구적 연결망을 통해 빛처럼 움직이며 단 1분만에 1억달러를 챙기는 무정부 금융꾼들에 의해 세계경제는 춤을 춘다는 사실을 이미 이 책은 1년전 멕시코 사례를 들어 경고했다. 지금 세계는 이렇게 돌아가고 있고 이들 사냥꾼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 생살여탈권을 고스란히 내놓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것이 누구의 덫인지조차 모른 채 '네탓' 타령만 하고 있다.

IMF는 이들 사냥꾼들이 짓밟고 간 폐허를 정리하는 소방수일 뿐이다.

IMF체제가 주적 (主敵) 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국제금융전쟁이 우리의 전선이다.

재벌이 주적이 아니라 급변하는 국제경제환경에 둔감했던 지도자.전문가들의 무지가 극복의 대상이다.

또 하나의 덫, '3金의 덫' 이 무엇인가.

독주.독선.독재로 대표되는 구시대적 정치풍토를 청산하기 위해선 3金시대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게 한나라당이다.

나 자신도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있다.

기왕 3金청산을 내세운 한나라당으로선 1金도 아닌 양金 정권을 내발로 국회에 들어가 내손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명분과 논리면에서 총리인준 거부는 일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명분과 구호 때문에 헤어나지 못하는 진퇴양난의 덫이기도 하다.

국난위기 한가운데서 노동자가 불법파업하듯 국회등원을 거부하고 국정공백을 불렀으니 이 또한 구시대적 정치행태다.

3金시대 청산을 외치면서 두달만에 3金시대와 똑같이 무작정 반대를 밀고나갔으니 구시대와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을 면키도 어렵다.

두개의 덫에 걸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세계화의 덫' 을 벗어나자면 참여와 협력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두 필자는 제시한다.

민주적이고 행동력있는 새로운 유럽연합이 경제전쟁에서 살아남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도 참여와 협력이다.

자중지란 (自中之亂) 을 일으켜선 안된다.

세계가 20대 80의 분할구도로 치닫고 있고 금융사냥꾼들이 호시탐탐 먹이를 찾아 헤매는 판에 노사가 따로 없고 여야가 구별되지 않으며 재벌과 중소기업이 별도로 움직일 수 없다.

대기업.소기업으로 갈라 위협할 게 아니라 기업 모두를 전사로 무장하는 비상체제로 돌입해야 한다.

공리공담 (空理空談) 으로 세월을 허송할 여유가 우리에게 없다.

3金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구호의 덫' 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

청산의 주적은 사람이 아니라 그 인물들이 만들어낸 구시대적 행태임을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일찍이 설파했다.

구시대 정치행태를 답습하면서 구시대 청산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참여와 협력으로 난국을 타개하는 새 풍토를 일궈내야 한다.

3金의 덫에서 벗어나야 세계화의 덫을 벗어나는 방안에 우리 모두가 몰두할 수 있다.

권영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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