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플루, 한국에선 잠잠한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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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국내 신종 플루(인플루엔자A/H1N1) 소강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에서 입국한 62세 여성이 3일 추정환자로 분류된 이후 열흘이 지났는데도 추가 환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국내 확진환자는 3명에서 멈춰 있다. 미국·유럽에서는 감염자가 계속 늘고 있고 중국에서 추가 환자가 나오면서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과 조류 인플루엔자(AI) 때처럼 이번에도 한국은 큰 피해 없이 신종 플루가 지나가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잠잠한 가장 큰 이유로 우리 국민의 정책 순응도를 든다. 어느 나라보다 방역당국의 대응 지침을 잘 따른다고 분석한다. 또 사스를 계기로 선진국 못지않은 방역 체계를 갖춘 점, 다른 나라와 여행 패턴이 다른 점 등이 역할을 했다고 본다.

질병관리본부 전병율 전염병대응센터장은 “손 자주 씻기 등 개인위생수칙을 잘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증세가 없어도 외국 나갈 때 치료제 ‘타미플루’를 찾을 정도로 우리 국민의 조심성이 뛰어나다”며 “위험 국가에서 온 사람들은 조금만 이상 증세가 나타나도 곧바로 보건소에 신고하기 때문에 확산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박승철 신종인플루엔자자문위원장(성균관대 의대 교수)도 비슷한 의견이다. 박 위원장은 “정부와 국민 간의 리스크 커뮤니케이션(risk communication)이 세계 최강”이라고 말한다. 전염병 유행 같은 위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정부는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국민은 이를 잘 따른다는 얘기다. 그는 “첫 감염환자는 일찍 나왔지만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아 정부 지침을 일사불란하게 따르는 덕분에 확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인천공항터미널의 하루 물 사용량이 신종 플루 발생 무렵인 4월 25일 4220t에서 27일 4720t으로 증가하더니 이달 10일에는 5220t으로 늘었다. 공항 이용자들이 손 씻기를 잘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요즘도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하루에 1만 명 정도 들어온다. 신종 플루 발생 전과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감염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여행 패턴의 차이에서 찾는다. 전 센터장은 “일본 감염자 4명은 미국 수학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라며 “개인 여행보다 단체 여행이 위생 관리가 어려운데 한국은 일본에 비해 미국 단체 여행이 적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하나투어 정기윤 홍보팀장은 “국내에서 미국을 여행하는 사람은 싸구려 호텔을 찾는 대학생은 적고 중산층 이상이 많다”며 “위생 상태가 좋은 호텔 등에 머무르기 때문에 감염 위험이 작은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정부의 치밀한 대응 전략이 이번에 빛을 발했다. 2003년 사스를 경험한 뒤 유행병 대응 4단계 전략을 만들었다. 지난달 미국이 멕시코 발병 사실을 발표하자마자 24일 공항 검역을 시작했고 대국민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는 방역 체계를 더 강화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전 센터장은 “중국이 지금은 검역을 철저히 하고 있지만 뚫리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 있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중국과 일본에서 감염자가 생기자 두 나라에서 오는 여객선 검역을 시작했다.

안혜리·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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