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바퀴’ 출입금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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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독일 남서부 프라이부르크 교외의 ‘자동차 없는 마을’인 보방의 성공에 자극받아 미국과 유럽에서도 자동차 의존율을 최소화하려는 도시가 늘고 있다. 차가 없으면 장거리 이동이 불편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 지구온난화 방지에 도움을 주고 지역사회의 유대가 강해지는 장점이 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13일 보도했다.

독일 남서부의 작은 마을 보방의 도로는 대부분 차가 다닐 수 없어 전차를 이용하는 주민이 많다. 이 전차는 인근 도시 프라이부르크와 연결된다. 전차에 자전거를 싣고 다니는 승객도 쉽게 볼 수 있다. [중앙포토]


인구 5500명의 보방은 자동차 강국 독일에서는 이례적으로 집에 자동차 진입로나 주차장을 만들지 못하게 한다. 대부분의 도로에선 차가 다닐 수 없으며 거리 주차도 금지돼 있다. 마을 안에선 자전거나 도보로만 다닐 수 있다. 쇼핑을 가거나 어린 아이와 이동하는 사람들이 카트 달린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차를 세우려면 마을 남쪽과 동쪽 입구 등 2곳밖에 없는 공용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차가 있는 사람은 이곳에 3만 유로(약 5000만원)를 내고 주차 공간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70%의 가정에는 차가 없다. 외부에서 이사 오는 사람도 절반 이상 차를 판다. 장거리 여행을 할 경우에는 여러 가구가 공동 소유한 차나 카 셰어링(차 공유) 클럽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차가 없는 불편을 최소화했다.

이 마을의 집들도 환경친화적이다. 태양열과 전자제품에서 나오는 열,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온기 등을 이용해 실내를 데우는 패시브 하우스 시스템을 채택한 건물이 100개를 웃돈다. 특수 환기시스템으로 실내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와 밖으로 나가는 따뜻한 공기가 흐르는 관을 나란히 배치해 열 효율을 높였다.

보방은 과거 독일군 기지였다. 그러나 2차 대전 후 프랑스군이 사용하다 1989년 독일 통일과 함께 독일에 반환됐다. 독일 정부는 90년대 중반 이 마을을 “지속가능한 지역 모델”로 지정해 개발했다. 차 없이도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전차가 마을 중심을 지나게 했다. 인근 도시 프라이부르크로 연결되는 전차 노선에는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주택·상점·음식점·학교 등을 배치했다. 이러다 보니 주민들은 차가 없어도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하이트룬 발터는 “과거 차가 있었을 때에는 항상 긴장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느긋하게 행복을 즐기며 산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보방을 모델로 한 도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은 국가 차원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지역 위주로 개발을 허용해 자동차 의존을 줄이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중교통으로는 갈 수 없는 교외 지역의 쇼핑몰이나 패스트푸드점, 주택단지 등의 개발이 금지됐다. 과거에는 가구당 최소 주차대수를 정했으나 2001년부터는 최대 주차대수를 제한해 차 소유를 억제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는 쿼리 빌리지 지역 공동체 개발이 구상되고 있다. 보방과 마찬가지로 집에 주차장을 짓지 못하게 해 자동차 이용을 줄이려 한다. 100명 이상의 주민이 이 계획에 동의했다. 그러나 미 비영리기관인 카-프리 시티 USA의 공동 설립자인 데이비드 시저는 “미국인들은 차 소유를 금지하거나 줄이려는 계획에 반대하는 경향이 있어 쿼리 빌리지 개발이 순조롭게 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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