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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려 먹는 봄나물 '조리타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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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봄나물은 때를 가리지 않고 아무 것이나 먹는게 아니다.

돋아 나오는 순서대로 먹어야 우리의 기를 채워준다.

입춘 무렵에는 입춘오신반 (立春五辛盤) 이라 하여 움파.산갓.당귀싹.미나리싹.무 등 매운 맛을 가진 채소를 새콤하게 무쳐 먹는다.

이 다섯가지는 겨우내 움츠렸던 오장육부에 비타민과 무기질을 공급하고 간을 자극해 원활한 활동을 하도록 도와준다.

2월쯤 되면 씀바귀 뿌리를 캐어 나물로 무쳐 먹는다.

잎이 조금 솟아났을 때 캐내어 쓴 맛을 우려내고 데쳐서 새콤한 초고추장으로 조물조물 무쳐낸다.

첫맛은 씁쓸하나 이내 입안 가득 향긋한 내음이 담겨 기운을 돋워준다.

이어서 차례대로 물쑥과 고들빼기 나물이 좋다.

특히 물쑥은 흙내음과 국화향이 은은하게 감돌아 봄을 한껏 느끼게 해준다.

3월에 언 땅이 녹으면 그때부터 온갖 나물이 나오는데 종류별로 특히 먹는 시기가 따로 있다.

우선 3월에는 진녹색의 싱그러운 달래.냉이.꽃다지.민들레.소루쟁이 등 향이 깃든 들나물을 먹는다.

4월에는 산중의 원추리.미역취.홋잎.고비.고사리 등 담백한 산나물을 캐어 먹고 다시 산밑의 잔대싹.개암취.참나물.모시대.우엉잎.상추싹.구기자 어린 순 등 신선한 나물을 뜯어다 먹는다.

이 때쯤에는 장독대나 축대 사이로 돌나물과 비비추 잎이 한껏 터져 나온다.

나물 재료를 구입할 때는 가급적 어리고 연하며 색이 짙은 것을 골라야 하며 조리는 신선할 때 바로 하는 것이 비타민이나 유용 성분의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조리할 때 산나물은 여린 것은 주로 삶아 데쳐서 청장 (국간장)에 갖은 양념으로 무치며 단단한 것은 기름에 볶기도 한다.

들나물은 초고추장에 새콤하게 무쳐야 맛이 있다.

나물에 넣는 파.마늘은 아주 곱게 다져야 하고 뽀얀 양념국물이 우러나오도록 오랫동안 조물조물 무쳐야 맛이 더욱 좋다.

향미가 진한 나물이나 버섯나물을 무칠 때는 파.마늘 등 진한 양념은 되도록 적게 넣어 재료 자체의 순수한 향과 맛을 살리도록 한다.

봄나물에는 각종 약용 성분이 들어있어 위장을 튼튼하게 하고 기를 살려주며 몸을 가볍게 하는 등의 효능을 나타낸다.

윤숙자 (배화여전 교수.전통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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