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28> 히노마루 교실과 풍금소리 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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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느닷없이 교명이 바뀌었다. ‘온양명륜심상소학교(溫陽明倫尋常小學校)’라고 써 붙였던 동판이 뜯겨 나가고 그 자리에 ‘온양국민학교’라고 쓴 큰 목간판이 나붙었다. 내가 학교에 들어간 것은 1940년이었는데 바로 다음 해 3월에 ‘국민학교령’이 칙령(勅令)으로 공포된 것이다. 동시에 조선총독부에서는 민족교육금지령을 내렸다. 아이들은 획수가 많고 까다롭던 ‘尋常’이란 한자가 사라졌다고 좋아했다. ‘심상’이란 말이 사라지면서 그야말로 ‘심상’찮은 일들이 생기리라는 것을 애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들도 알 턱이 없었다.

‘심상소학교’라는 말은 명치유신(明治維新) 때(19년) ‘소학교령’을 제정하면서 써온 말인데 그것을 바꾼 것은 곧 나라의 체제를 또 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두 법령을 비교해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국민학교령’에서는 국가란 말이 ‘황국(皇國)’으로 변하고 아동(兒童)은 ‘소국민(小國民)’이 된다. 무엇보다 그 목적어가 다르다. 소학교령은 “아동의 신체 발달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국민학교령은 “국민의 기초적 연성(鍊成)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다. ‘연성’이란 말은 ‘연성도장’이나 ‘연성소’의 경우처럼 심신과 기예를 훈련하는, 일종의 군사용어라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국민학교’란 ‘황국신민’을 단련시키는 연성도장이었던 것이다.

명치시대에 만들어진 소학교령은 한 자도 고치지 않고 지금 우리가 써도 탈날 게 없다. 심상소학교의 ‘심상’은 보통이나 일상적인 것을 뜻하는 프랑스어의 ‘노르말’, 영어의 ‘오디너리’의 개념을 그대로 옮긴 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본이 개화의 모델 국가로 삼았던 영·불의 교육제도를 수입해 왔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2차 대전이 벌어지고 중·일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군국주의 체제로 들어서면서 공포된 ‘국민학교령’은 영·불을 배척하고 나치의 교육법을 반영한 것이다. 일본의 은행법이 히틀러가 만든 도이치 은행법을 도입한 것처럼 ‘국민학교령’은 그 명칭부터가 나치가 마든 ‘폴크스 슐레(Volks Shule)’에서 가져온 말이다. 생각할수록 ‘언어는 생각의 집’이다

알다시피 히틀러의 국가주의·전체주의를 한마디로 응결시킨 것이 ‘폴크스(Volks)’라는 말이었다. 모든 국민을 똑같은 학교에서 똑같은 교육이념으로 훈련하고 똑같은 모양의 폴크스바겐(volkswagen)에 태우려고 했다. 그 ‘폴크스’가 일본으로 건너온 것이 ‘국민학교’의 국민이요, ‘국민복’의 바로 국민이다. ‘국민학교’의 개칭만이 아니라 수신·국어·국사·지리의 네 과목을 ‘국민과(國民科)’라는 이름으로 묶은 것도 나치의 커리큘럼과 명칭을 그대로 따 쓴 것이다.

슬프게도 ‘민족(民族)’이라는 말이 그러했듯이 우리에게 그렇게도 익숙한 ‘국민’이란 말 역시 일본인들이 근대에 들어와 만든 말이다. 구한말 안중근 의사가 단지 장인을 찍은 족자만 해도 ‘국민’이 아니라 ‘대한국인(大韓國人)’이라고 선명하게 쓰인 문자를 읽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같은 식민지 시대에 살던 한국인들이라고 해도 심상소학교를 나온 사람과 국민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서로 다른 한국인이라 할 수 있고, ‘일제 36년’이라는 말도 국민학교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불러야 옳다.

수백 년 내려온 서당과 향교가 학교란 말로 바뀌었을 때에도, 그리고 심상소학교가 국민학교로 다시 바뀌던 때에도 한국인의 관심은, 역사는 그냥 강물처럼 흘러갔다. 아니다.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된 뒤에도 우리는 ‘국민학교’라는 말을 그대로 썼다. 일본이 패전 후 민주화를 추진하며 맨 처음 한 일이 ‘국민학교’란 말을 버린 것이었는데도 우리는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에서야 ‘초등학교’로 고쳤다. 그런데 왜 고쳐야 했는지 아는 학부모들은 많지 않다.

‘소학교 아동’으로 입학해 일 년 만에 그 신분이 ‘국민학교 소국민’으로 바뀌면서 한국인은 정말 일본인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영어에서는 그냥 ‘피플’이고 ‘네이션’인데 한국인들에게 따라붙는 말은 많기도 하다. 창생(蒼生)이라는 말, 백성이라는 말, 국민·신민이라는 말, 공민과 시민이라는 말, 그리고 인민과 민중이라는 말…. 말이 바뀔 때마다 찢기고 피투성이가 되고 가위에 눌리면서 살아야 한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다음 회는 ‘깃발이 된 태양은 암흑이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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