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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준의 프레임24]'긴급수배' 옛 영상자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문제 : 다음 영화 네 편의 공통점은? '아리랑' (나운규 감독) , '임자없는 나룻배' (이규환 감독) , '십대의 반항' (김기영 감독) '만추' (이만희 감독) 답 :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필름을 찾지 못해 오늘날 볼 수 없는 '전설' 이 되고만 영화들. 우리의 영화 유산은 많은 부분이 제대로 보존되지 못했다.

60년대까지 수많은 영화필름들이 밀짚모자의 테 장식으로 재활용 (?) 되어 영영 사라져 버렸고, 어떤 영화들은 원판 네거티브 필름을 대만이나 홍콩에 통째로 수출해버린 후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오늘날 우리가 옛날 한국영화의 실체를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74년에 설립된 영상자료원 덕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기관이 우리나라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잘 모르겠지만, 벌써 20년이 넘게 영상자료원은 한국영화의 보존이라는 생색 안나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영화사와 극장의 창고에서 먼지를 덮어쓰고 인멸되어가던 필름들을 찾아내고, 새롭게 프린트를 떠서 상영이 가능하도록 하며, 시나리오, 포스터, 스틸 사진과 같은 관련자료를 보관하는 그런 일들이다.

국내에서 상영되는 옛 한국영화들, 그리고 이번 베를린 영화제의 김기영 감독 회고전처럼 해외 영화제에 소개되는 한국영화들의 프린트는 대부분 영상자료원에서 관리, 보관하고 있는 것들이다.

영상자료원에는 약 3천편의 우리 극영화가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극장에서 상영 가능한 영화는 그중 일부에 불과하다.

네거티브만 남아 있는 영화들의 프린트를 뜨는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작업은 필름 보존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에 불과하고, 손상된 필름을 복구하는 본격적인 복원 작업은 아직 요원한 실정이다.

필름 복원에 필요한 전문인력, 장비, 예산,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영화유산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관심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필름을 보관하는 수장고의 수용능력이 머지않아 한계에 이를 것임을 걱정하는 실무자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외국처럼 옛 영화의 복원판들을 만들어내고, 혹은 해외 어딘가에 묻혀 있을지 모르는 걸작 한국 영화를 발굴했으면 하는 바람이 사치스런 생각이란 느낌이 들 정도이다.

영화의 실체없는 영화 역사는 공허한 신화가 되기 십상이다.

새로운 세대가 우리 영화의 전통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그러한 전통을 나라 밖에 알려 오늘의 한국 영화의 위상을 함께 높일 수 있도록, 그리하여 단절과 퇴행으로부터 한국 영화를 살려낼 수 있도록, 더 늦기 전에 한국 영화의 복원에 관심을 기울일 때가 아닐까. (현상수배 : 만약 이 글을 읽은 분 가운데 옛 한국영화 필름이나 관련자료의 소재를 아시는 분은 다음 전화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영상자료원 : 02 - 521 - 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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