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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서핑차이나] 중국의 한글학도가 겪은 쓰촨 대지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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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베이징에서는 ‘한글 백일장’이 열렸습니다. 이날 대회에는 중국에서 한국어(조선어)학과가 개설된 대학 가운데 46개 대학 80명의 학생이 참가했습니다. 백일장 취재를 위해 참가학생의 응시원서를 한번 훑어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고향이 쓰촨(四川)인 학생이 두 명 있었습니다. 마침 쓰촨 대지진 1주년이 다가오기에 두 학생을 만나봤습니다. 다음은 두 학생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입니다.


베이징 위옌(語言)대학 4학년 생인 주후이(朱慧·23·여)는 쓰촨성 원촨(汶川)현 웨이저우(威州)중학교(한국의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바로 지난해 5월12일 발생한 대지진의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이다. 아버지는 짱(藏)족, 어머니는 창(羌)족으로 그 자신은 짱족이다. 지난해 대지진으로 학교 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쓰촨성 청두(成都)에서 북쪽으로 450㎞ 떨어진 훙위안(紅原)현에 있는 집에 가려면 원촨을 반드시 지나야 한다. 지난해 대지진 발생 당시에는 한국 경희대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있었다. 지진 소식을 듣고 인터넷 메신저로 친구들을 찾았지만 도통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고향에 피해는 없었나?
“부모님이 사시는 곳이 진원지와 멀어 다행히 피해는 없었다. 지진이 발생한 날 서울에 있었다. 소식을 듣고 인터넷 메신저에 접속했는데 연락을 주고 받던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지진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친구도 있다. 위로 전화를 했지만 건넬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학교에서 펼친 이재민 돕기 모금 활동에 참가했다. 지금도 집집 돌아갈 때 폐허가 된 원촨을 지나가면 마음이 아프다. 추억이 담긴 학교 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응시 서류에 위옌대 우수 단간부라고 적었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공청단에 가입했다. 아버지가 고향의 작은 신문사 기자다. 그 영향으로 대학 입학 후 홍보부문을 선택했다. 지원자가 적어 간부가 됐다. 정기적으로 모여 발표를 하거나 노양원 같은 시설에 가서 봉사활동을 펼친다.”
-한국어를 공부하게 된 이유는?
“나는 소수민족이라 대학 입학 과정에서 특별 혜택을 받았다. 학과 선정은 미룬 채 베이징 위옌대학에 우선 합격했다. 베이징에 올라 온 후 많은 한국 유학생들의 활발한 모습을 보고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됐고 전공으로 선택했다.”
-한국에 와 본 경험은?
“지난해 한국 국립국제교육원에서 진행하는 중국 한국어과 대학생 초청연수 프로그램에 선발돼 경희대 국제교육원에서 6개월간 한국어를 공부했다. 학비는 물론 생활비로 매달 55만원을 받았다. 오전 강의만 들으면 자유시간이 많아 서울 곳곳을 둘러봤다. 한국은 식당 아주머니부터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친절하고 다정했다. 꼭 다시 가고 싶다."
-한국에서 어떤 경험을 했나?
“경복궁, 인사동, 청계천, 명동 등 서울 곳곳과 제주도, 경주 등 여러 곳을 둘러봤다. 특히 지난해 12월 경기도 서이천물류창고 화재 화재사건 현장을 마침 도자기 체험을 다녀 오다가 직접 목격했다.”
-한·중간에 인터넷을 통한 갈등이 불거지는데?
“서로 상대 국가에 대해 잘 몰라서 벌어지는 일이다. 양국간에 교류가 많다고 하지만 중국 13억 인구 가운데 한국에 가본 사람은 아주 적다. 중국은 34개 성과 시로 이뤄졌다. 이들 사이에서도 반목이 심하다. 이에 비하면 한국과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한국어 공부는 어떻게 했나
“한국 영화를 통해서 공부했다. ‘어린 신부’를 100번도 넘게 봐서 대사를 달달 외울 정도다. 너무질려서 지금은 영화 주제가를 들으면 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 드라마를 가지고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영화가 더 좋다. 드라마는 재미있는 스토리에 빠져서 어학 공부에 도움이 안 된다.”
-한글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느 날 한글을 모르는 친구가 내 한글 교재를 보더니 ‘한글은 귀엽다’고 했다. 한글은 모양새가 마치 그림 같다며 귀엽다고 했다. 중국어는 한마디로 말한다면 ‘어려운 말’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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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백일장에서 2등 상인 은상을 받아 성균관대 유학 기회를 얻은 션치(沈琪·22·베이징제2외국어대 3)도 쓰촨성 진탕(金堂)현이 고향이다. 그는 지난해 대지진 발생 당시 중국에 없었다. 국립국제교육원에서 진행하는 중국한국어과 대학생 초청연수 프로그램에 선발돼 서울에서 연수를 받고 있었다.
그는 지난 해 대지진 발생 당시 홀어머니와 통화가 두절돼 맘 졸이던 경험을 표현해 은상을 수상했다. 그에게 대지진은 역설적으로 어머니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해줬을 뿐더러 한국 유학이라는 ‘선물’을 준 셈이다.
그에게 올해 5월12일에는 무슨 일을 할 생각인가 물었다. “어머니한테 아침 일찍 전화를 드리겠다. 2학년 때 적십자 회장을 맡아 활동했다. 봉사활동에 참여해 보람찬 일을 하고 싶다.”
국제정치를 공부해 외교관이 장래 희망이라는 그는 한·중 관계 발전을 위해 큰 일을 하고 싶은 지한파였다. 쓰촨 대지진이 그에게 한국과 또 하나의 인연의 끈을 엮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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