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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사람냄새 나는 평전이 그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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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확실히 전기·평전은 서구가 우리보다 앞섰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가차 없는 포폄(褒貶)이다. 해당 인물에 대한 열광적 추앙과, 가차 없는 칼질이 오간다. 『사르트르 평전』보다 훨씬 강력한 사생활 폭로는 마이클 샬러의 『더글러스 맥아더』인데, 이 책은 지독한 맥아더 죽이기다. 맨처스터의 『아메리칸 시저-맥아더 평전』의 영웅적 묘사와는 전혀 다르지만 그게 평전의 맛이다.

맥아더를 어떻게 죽이지? 초라했던 남성능력까지 들먹인다. 첫 부인 루이스의 입을 빌려 “말로만 장군이지 침대에서는 막상 이등병”이라고 이죽댄다. “오줌 눌 때 말고는 자기 물건을 안 쓴다.”는 그녀의 말까지 인용한다. 오해 마시라. 맥아더의 성적능력 문제는 남성성 결여로 해석돼 한때 군대 진급에서 곤란을 겪었다는 점을 설명하는 에피소드이니까.

“제3자가 쓴 전기·평전이니까 뭐” 하시겠지만, 자서전도 마찬가지다. 모든 걸 드러내고 그걸로 평가 받는다. 영화배우 앤소니 퀸의 자서전 『원 맨 탱고』가 증거다. 경제학자 고(故) 정운영도 이 책을 좋아했지만, 하이라이트는 여자관계 고백이다. 떠꺼머리총각 퀸은 19세 때 빨강머리 소녀(에비)와 사랑에 빠진다. 한번은 그녀 집에 놀러갔다가 운명의 여인을 마주친다. 그녀의 엄마인 실비아였다. 둘은 한 눈에 뻑 갔다.

퀸은 예비사위 자격으로 에비 네의 가족휴가를 따라갔다. 약혼녀는 저쪽의 텐트에서 잠자던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백사장에 누워 밤하늘을 보며 사랑을 속삭이던 둘은 퀸과 실비아였다. 맙소사! 둘은 미쳤다. 남자는 약혼을 파기했고, 여자는 이혼을 감행했다. 그리고 묻지마 결혼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나란히 손을 잡고 혈액검사차 병원을 찾았을 때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

“부인이 이 젊은이의 어머니인가요?”

의사의 한마디에 충격 받은 둘은 끝내 헤어졌다. 퀸의 고백에 아픔이 묻어난다. “실비아는 연인이자 어머니다. 그녀의 창작품이 바로 나다.” 무슨 말일까? 무식쟁이 퀸은 그녀로부터 사랑만 배운 게 아니라 문학·철학도 배웠다. 니체·에머슨·보들레르·헤밍웨이를 달달 외웠고, 베토벤도 알게 됐다. 훗날 명배우의 탄생은 그 결과다. 실제 화가로도 활동했다. 이만한 사람 스토리, 사랑이야기가 또 있을까? 우리는 언제 이런 멋쟁이 전기·평전들을 만나보지?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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