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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스타일]발해에 대한 무관심은 곧 대륙역사와 단절 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6면

한반도가 좁아 보일 때, 우린 광개토왕을 외친다.

중원으로 뻗어가는 벽력 같은 기개에서 탁트인 미래를 본다.

그러나, 고구려를 능가하는 위세를 발해 (渤海)에서 찾은 이가 있다.

10대들의 우상 서태지. 그는 분단 조국이 지향해야 할 꿈을 발해에 두었다.

'진정 나에겐 단 한가지 내가 소망하는 게 있어. 갈려진 땅의 친구들을 언제쯤 볼수가 있을까. '

( '발해를 꿈꾸며' 중에서) 서태지가 학교에서 역사공부를 열심히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민간연구소가 뽑은 국내 사상 최고의 히트상품이 '서태지와 아이들' 의 앨범인 점에서, 발해의 '상품' 가치만은 감지할 수 있다.

우리민족의 건국 신화를 1백권 대서사시 '천국의 신화' 로 그려내고 있는 만화가 이현세 (44.세종대 교수) 씨는 작품의 대단원을 발해로 마무리할 계획이다.

“발해에 대한 우리들의 무관심은 곧 대륙과의 단절을 의미하죠.” 이 시대 젊은이들의 욕망을 정교하게 읽어온 두 '거장' 이 천착한 발해. 그 화려한 왕국이 광야에 깃발을 꽂은 이래 꼭 1천3백년이 흘렀다.

이후 서기 1998년 첫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앞바다엔 뗏목 한척이 파도에 흔들리고 있었다.

21세기바다연구소 장철수 소장등 4명을 실은 배였다.

이들은 발해인의 후예이고자 했다.

원시의 배에 몸을 싣고 옛 발해인들이 걸었던 물길을 따라가는 중이었다.

최악의 상황은 계속됐다.

교신이 두절되고 폭풍이 찾아왔다.

그래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발해인임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라고 했다.

'현재' 가 말을 걸지 않으면 '과거' 는 역사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발해는?

우린 그저 '고구려의 유민이 말갈족을 이끌고 세운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발해는 지금 동북아 국가들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전쟁터다.

중국의 발해유적들엔 이런 안내판이 붙어있다.

'발해국 (698~926) 은 당 왕조에 예속되어 있었으며, 속말 (粟末) 말갈을 주체로 건립된 지방민족정권이다.

' 그들에게 발해는 중국이다.

소련 역시 발해가 우리민족의 나라임을 부인한다.

'말갈족이 세운 독립국가' 로서 중국의 역사도, 한국의 역사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일본은 발해가 '일본에 조공을 바치던' 국가라고 목청을 높인다.

발해를 지키고자 하는 관점으로만 보면 북한의 노력은 눈물겹다.

발해가 고구려의 정통성을 물려받은 국가임을 굳건하게 외쳐왔다.

이에 비하면 우린 참 초라하다.

오랫동안 발해지역에 접근할 수 없었음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고 삼국통일을 인정하지 않고 발해와 후기신라의 양국시대로 규정하는 북한의 사관을 무작정 따라갈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중국.러시아.북한 지역에서 잇따라 출토되는 풍부한 발해유물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졌는가.

뗏목 '발해 1300호' 가 악조건 속에서도 항해를 멈추지 않은 것은 그런 항의였을 게다.

이들과 여러차례 활동을 함께 한 윤명철 한국탐험문화연구소장의 견해 - “대원들의 포부는 불굴의 투지를 통해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올해 안에 또다른 뗏목이 뜰겁니다.”

지난달 23일 오후 4시 16분쯤 이들은 무전기로 한국에 도움을 청했다.

구조요청이 팩스로 일본 해상보안청에 접수된 건 약 2시간 15분뒤. 순시선이 뗏목을 발견하기까지 또 2시간 20분이 흘렀고 헬기가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4시간 후였다.

그러나 헬기가 왔을 땐 바람이 초속 20m의 강풍으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뗏목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현세씨의 '천국의 신화' 는 거란의 공격으로 멸망위기에 처한 발해가 한반도에 구원요청을 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이씨는 그 SOS가 대륙의 역사를 잊으려하는 후손들에 대한 선조의 안타까움이라고 설명한다.

어쩌면 탐사대원들은 그 태고의 구원요청을 들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걸 전달하기 위해 끝까지 싸웠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남은 우리는 떠난 이들보다 더 많은 숙제를 안게된 것이리라.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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