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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학자 "동서문화 결합" 주장…열린 생각이 막힌 시대 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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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구화가 어떤 것인지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우리는 지구화의 매운 맛부터 먼저 보고 있다.

IMF사태는 지구촌을 하나의 시장으로 묶는 새로운 시대가 경쟁력이나 자생력이 떨어지는 국가나 지역, 사람들에게 얼마나 매섭게 다가오는지를 여실히 깨우쳐준다.

이 국경 없는 시대에 우리를 받쳐줄 사상과 문화의 지표는 무엇인가.

최근 출간된 책 중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할만한 명쾌한 논저들이 보인다.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는 '또 하나의 기적을 향한 짧은 시련' (나남刊) 이라는 신저를 통해 "IMF사태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며 사회시스템의 미비에서 발생했다" 고 강조한다.

그래서 '지금의 고통은 또 하나의 기적을 위한 시련' 이라고 주장하고 '한강의 기적' 에 대한 장미빛 추억을 이제는 잊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새로운 기적을 위해서는 이전과 같은 주먹구구적이고 관변지배적이며 착취적인 시스템을 철저히 극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정보화 사회에 맞춰 경쟁력 있는 교육, 참여와 개방을 추구하는 노동정치, 복지와 연금제도의 개혁과 확충, 인간의 행복이 중심에 서는 새로운 사회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질적인 IMF체제 하에서는 이런 식의 미래지향적 사회개편을 통해 한국사회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미국 켄트주립대 철학과 이광세 교수의 '동양과 서양 두 지평선의 융합' (길) 은 자신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한국사회가 갖는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인 획일성과 배타성를 간접적으로 질타하고 있다.

칸트의 과학철학을 전공하다 동서 비교철학으로 방향을 바꾼 이교수는 유가와 칸트, 장자와 로티를 서로 비교 연구하면서 이들이 서로 상당한 유사성을 갖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지금 시대에 세계를 동양과 서양, 또는 나와 남의 이분법으로 보는 사고방식은 버려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끝으로 외국인의 충고 하나. 프랑스 컬럼니스트 기 소르망이 쓴 '열린 세계와 문명 창조' (한국경제신문사) 는 전세계의 경계지대를 직접 돌아다니며 쓴 인류문명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담고 있다.

그는 미국문화를 상징하는 맥도널드와 프랑스어로 세계를 뜻하는 르 몽드 (Le Monde) 의 결합어인 맥몽드라는 신조어를 내놓고 있다.

그는 현재를 전세계가 개별성과 다양성을 무시당한 채 획일적으로 미국적 사고방식을 강요받는 맥몽드의 문화제국주의 시대로 규정한다.

미국 주도의 IMF체제 강요도 그중 하나로 꼽힌다.

기 소르망에 따르면 각 대륙.국가.지역이 맥몽드의 시대를 이기고 스스로 생존하려면 서로 부딪히는 문화를 융합해 새롭고 창조적인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상충하는 남의 문화를 배척하지 않고 서로의 특질을 인정하면서 화합하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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