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칼럼] 사내정치에 사외정치를 더해야 성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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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월간지가 국내 500대 기업 CEO의 출신 대학과 전공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대학을 나와야 사장도 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한 사람에게는 억울한 일일 수 있겠지만, 이것은 냉엄한 현실이다.

CEO 자리를 둘러싼 경쟁도 결국 이들 사이의 경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우위를 결정짓는 변수는 다양하다. 실력은 기본, 충성도 한 몫 할 터이지만, 사외정치 역량도 빼놓을 수 없는 변수다.

정치가 비즈니스, 심지어 CEO 인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살짝 열 받을 분들도 있겠지만, 이것 또한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특히 ‘관’과 비즈니스를 할 일이 많은 기업일수록 그러하다.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은? 맞다. 건설업이다.

건설업체들은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관’과 일할 기회가 많다 보니, 정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지는데, 현 정부에 들어서 대형 건설업체들의 CEO가 대통령이 다닌 특정 대학 출신으로 임명된 것은 이미 뉴스에 보도된 바와 같다.

정권이 바뀌면 정부 핵심인사들이 바뀌고, 정부 핵심인사들이 바뀌면, ‘관’과 사업을 많이 하는 회사의 경영진도 바뀌는 일련의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것! 이것을 관 주도 경제체제 하에서 굳어진 관행으로 분석하기도 하지만, 선진국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난다. 민간인의 관료 기용이 많은 미국에서는 크로스오버형 CEO도 많지 않던가?

여기에서 우리는 사내정치 역량 못지않게 사외정치 역량도 중요하다는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사내정치에서 아무리 ‘킹왕짱’이라 할지라도, 바깥 정치의 흐름을 잘 읽지 못하거나 흐름을 잘 못 탄다면, 원하는 CEO 자리에 등극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 그것이 직장인의 운명이라는 점, 잘 기억해두기 바란다.

사내정치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웬 사외정치? 머리 아파할 분들이 많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임원급에 등극하게 되면 어차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 된다. 대기업치고 정치권의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 곳이 있던가? 회사 밖 정치는 이렇게 여러분 곁을 배회하고 있다.

임원급 이상이 되면 정치는 이렇게 다가온다. 먼저, 정치인들로부터 직간접적인 받게 되는 후원 요청! 이 후원 요청이라는 것이 대개 노골적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 다만, 느낌상 분위기상 후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 생기기 마련이다. 물론, 회사 차원에서 화끈하게 밀어줘야 할 경우도 더러 있다.

여기에 더해, 정부로부터 정책자금 지원을 받아야 하거나, 정부조달에 참여해야 하는 기업에 몸을 담고 있다면, 좀 더 적극적인 ‘액션’이 필요해진다. 관련부처 담당자와 접촉을 해야 하고, 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윗선을 찾아내야 하고, 또 그 윗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 핵심의 누군가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 요즘도 이런 줄대기에 연연 하느냐고? 독점기업이라서 경쟁자가 없다면 그런 것 따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은 경쟁에서 이기려고 전력투구를 하기 마련이고, 이 과정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 마련이며, 일종의 로비도 불사하게 되는 것이다.

사외정치 역량, 곧 얼마나 정관계 실세그룹과 네트워크가 잘 돼 있고, 그 네트워크를 유효적절하게 또 합법적으로(?) 잘 활용해서 경쟁에서 이길 것이냐의 문제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이것도 결국은 관계의 문제이지만, 관계 이상의 ‘기술’이 필요한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합법적으로’ 이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합법적으로 이뤄지지 못해 사단이 난 경우를 우리는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의 사례에서도 잘 볼 수 있지만, 로비행위가 불법으로 규정된 현행 법 하에서는, 기업의 임원급 이상 경영진도 정치인들 못지않게 교도소 담장 위를 ‘가끔씩은’ 걷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외정치를 잘 한다는 것은 결국 불법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으면서, 정관계 인사들을 잘 활용해서 경영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기업들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자주 사용하는 것이 바로 경영진을 정권 코드에 맞춰 재조직하거나, 정관계 출신을 고문 또는 사외이사로 임명하거나, 유력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내는 방식이다.

그러면, 개인 차원에서는? 정관계 인사들과 꾸준하게 네트워크를 해서 인맥을 넓히는 한편, 인연을 깊게 하고, 정권의 흐름을 읽고 대처하는 한편, 필요할 때 합법적인 방식으로 이들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그런 역량이 있다는 것을 은근슬쩍 소문도 내야 한다! 대기업 중에는 아예 이런 역량을 인사에 반영하는 곳도 있다고 하지 않던가?

일반적으로 사외정치 역량은 위로 올라갈수록 더 중요해진다. 그러나 때로는 중하위직에서도 생사를 가르는 변수가 되기도 한다. 모 실세 국회의원의 조카인 아무개 차장은 구조조정 와중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다!

회사의 사외정치 전략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거나, 사주 또는 CEO가 이런 문제를 당신과 상의하는 상황이 온다면, 당신도 이제는 진짜 핵심라인이라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주의하라! 피곤하게도, 영원한 권력은 어디에도 없다!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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