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한국·폴란드 합작영화 '이방인' 감독 문승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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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영화감독이라고 그랬죠?' 인터뷰용 사진을 찍으며 사진기자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혼잣말처럼 덧붙인다.

'코미디언이나 개그맨 같은 인상이야…. ' 각양각색의 직업인들의 얼굴을 10년넘게 찍어온 사진기자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군' 싶기도 하다.

하지만 외양이 우리를 속이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이방인' 으로 데뷔한 문승욱감독 (31) 은 첫 인상과는 판이하게,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고집하는 젊은이다.

4년전 제1회 삼성 나이세스 단편영화제에 출품했던 '어머니' 에서부터 그런 조짐은 보였다.

전장으로 떠나는 아들이 어머니와 작별을 하면서 나누는 모자간의 애틋한 정을 마치 타르코프스키 영화에서처럼 유장한 호흡으로 처리했던 것이다.

이 영화로 예술공로상과 심사위원상을 타면서 몇 안되는, 주목받는 '유학파' 로 떠 올랐다.

당시 그는 폴란드영화학교 (우츠) 학생이었고 이제 곧 졸업을 한다.

우츠에서는 '십계' '블루' '화이트' '레드' 등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재작년에 작고한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밑에서 배웠단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은 학생들에게 기술적인인 면을 많이 강조했다.

영화에 담기는 내용은 각자 알아서 배우라는 주의였다.

혼도 많이 났지만 특별히 내 영화가 키에슬로프스키감독의 영향권 아래 있다고는 생각지 않고 그럴 뜻도 없다.

영화보다는 오히려 문학에서 영감을 받는 편이다.

소설 등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상념들을 영화로 옮기려고 한다.” 폴란드를 비롯해 유럽에는 태권도 도장이 많다.

한국에서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음식점 만큼이나 흔하다는 것이다.

“폴란드에서 만난 태권도 사범들 가운데는, 우리들의 선입견과는 달리 섬세하고 내면 깊은 이들이 꽤 있다.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모으고 조립해서 안성기씨가 맡은 '킴' 이라는 인물의 성격을 만들었다.” 그런 탓인지 영화 속의 에피소드나 인물들의 행동양식이 다소 구체적이지 못하고 어떤 관념에 따라 움직인다는 느낌도 준다.

“아직 젊어서 경험이 일천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폴란드에 가기 전에는 외로움이나 고독같은 것은 의식적으로 피하는 주제였으나 이국에서 살면서 그런 문제들에 관심이 쏠리는 걸 느꼈다.

이번 영화는 '외로운 인간' 들에 관한 영화다.

이국을 떠돌아도, 고향에 고착돼 있어도 언제나 쓸쓸한 사람들 말이다.

왜 하필 태권도냐고? 외국을 전전하는 고독한 한국인의 내면을 드러내는데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아르헨티나인이라면 탱고를 택하지 않았겠는가.” 그도 태권도 초단이다.

그러나 군대에 가서야 띠를 매어본 '훈련용 태권도' 라고.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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