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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고미술연구모임 '솟대하늘'…엉뚱한 유물모으며 조상의 숨결 느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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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언 제부턴가 우리는 어떤 것이 담고 있는 내면의 가치나 깊이보다는 순간적이고 표피적인 아름다움에 만족하고 있다.

요즘 TV를 장식하고 있는 대중문화 포화현상이 상징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전통미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슨 터무니없는 행동인가.

대구에 있는 고미술연구소 '솟대하늘' .이 지역 국문학자와 미술계 인사들이 고미술품을 보존하고 이에 현재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만든 모임이다.

한데 이건 무슨 일? 여기엔 눈을 씻고 봐도 '예술품' 은 찾아볼 수 없으니. 대신 우그러지거나 배배 꼬인 도자기와 뭔가 허술해 보이는 민화, 별 가치 없을 것 같은 고서 (古書) 들이 그득 쌓여있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람에겐 당연히 쓰레기로 보인다” 는 게 연구소 대표 정재원 (42) 씨의 말. 그의 주문대로 유심히 뜯어보니 마음 한귀퉁이가 움직이는 듯하다.

도공의 지문이 버젓이 찍힌 찌그러진 술병이나 이가 숭숭 빠져버린 그릇, 사물들의 비례는 아예 무시해버린 산수화에다 화투장을 연상케 하는 유치한 민화하며…. 다시 정씨의 이야기. “이 모두가 버림받은 물건들입니다.

삐뚤빼뚤 못났어도 어딘가 정이 가지 않습니까.” 또 매화에 연밥이 붙어있는 민화 (民畵) 와 산이 솟아있는 달의 형상에선 자유분방한 사고를 읽을 수 있고 정승 모양의 물고기를 잡아먹는 메기의 모습에선 저항정신이 드러나 즐겁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떠받드는 문화재들이란 대개 소수의 지배계층만이 즐기던 것 아닌가.

신라금관.고려청자.청화백자 등은 매끈하고 반반하긴 해도 정이 쏙 드는 건 아니다.

오히려 농부의 손때가 반질반질 묻은 밥그릇에서 느껴지는 포만감이나 자식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걸어 놓았던 평민들의 서툰 글씨 솜씨에서 보이는 마음 씀씀이가 훨씬 깊이 와닿는 듯하다.

최근 연구소는 조상들이 갖고 있던 사고 (思考) 의 원형 (原形) 을 탐구하는 책을 준비중이다.

엉뚱하게도 고서적에 그려진 낙서에서 이를 찾겠단다.

연구소 소장 조현제씨의 말을 들어보자. “조선시대 아동들의 학습서를 보면 꽤 많은 낙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개중에는 웃음이 절로 나오는 것도, 당시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소박하고 순수한 마음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허리가 아파 구부정한 모습의 할아버지, 떡 하나 줘도 잡아먹는다는 호랑이, 밤에 변소 가는 것을 두렵게 하는 도깨비 등은 '단골 출연자' 였다.

개울에서 늘 잡을 수 있던 물고기나 아침잠을 깨워주던 새도 당연히 자주 나타난다.

책을 펴낸 후에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우리네 범인 (凡人) 들의 삶을 세계에 자랑스럽게 보여줄 계획이다.

최종목표는 박물관을 세워 민족의 꼬질꼬질하지만 따뜻한 '때맛' 을 보여주는 것. 정씨는 “지난해말에는 낙서그림을 담아 달력을 만들려고 했으나 제작할 사람을 찾지 못했고 96년 열었던 전시회에는 관람객이 거의 없어 아쉬웠다” 고 말한다.

'이미지 홍수의 시대' 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찾는 '솟대하늘' 의 활동은 자칫 부질없는 것으로 비칠지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미 (美) 는 겉치레가 아닌 울림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마음을 열 때만 갇힌 소리는 들려오는 것이다.

대구 = 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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