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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빅딜' 집중분석]졸속추진땐 예외조항 양산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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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기업간에 업종이나 계열사.사업부를 맞교환하는 빅딜이 이뤄지기까지의 과정은 '산넘어 산' 이랄 만큼 험난하다.

제도적으로 풀어야할 부분이 워낙 많은데다 제도외의 현실적 문제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재정경제원 관계자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측의 요구로 제도 정비를 추진하고 있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라며 "정부내에서는 무리한 제도 정비가 각종 예외조항만 양산할 것으로 우려하는 실정" 이라고 말했다.

◇제도적 걸림돌

무엇보다도 세금부담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현재는 토지.건물.기계등을 맞교환하면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 법인세를 내야한다.

보유자산을 장부가보다 비싸게 넘기면 양도차익이 발생, 특별부가세를 내아하고 넘겨받는 자산에 대해서는 취득.등록세를 내야한다.

정부는 빅딜관련 세금의 감면을 검토한다지만 이는 '소득있는 곳에 세금있다' 는 세제의 기본원리에 배치된다는 약점 때문에 여론의 공격을 피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은 해주면서 왜 중소기업은 안해주냐는 식의 얘기가 나올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또다른 官治금융 경계] 금융분야도 간단치 않다.

빅딜로 종전보다 많은 채무를 떠안을 경우 동일계열기업군 여신한도제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이 제도는 은행이 특정그룹에 자기자본의 45%이상을 빌려주지 말도록 한 것이다.

정부가 예외를 인정해줄 경우 은행이 특정그룹에 지나치게 많은 여신을 주게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상장기업 주식을 맞교환할 때는 의무공개매수제도가 문제가 된다.

현행 증권거래법에는 25%이상 상장주식을 매입할 때는 반드시 50%+1주를 확보할 때까지 증시에서 공개매수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40%+1주로 낮추기로 했지만 이또한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주식 맞교환을 활성화하려면 의무공개매수제도를 차제에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또 빅딜로 떠안게되는 대출금의 상환기일을 연장하는 등 상환조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제코가 석자' 인 은행들이 순순히 따를리 만무하고, 만약 그렇게 될 경우 '관치 (官治) 금융' 의 부활이라는 비난이 금융계에서 나오고 있다.

빅딜은 또 '독과점' 을 심화시킬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다.

특히 이문제가 '자유로운 경재' 을 강조하는 국제통화기금 (IMF) 과 미국의 입장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느냐도 큰 숙제다.

공정거래와 관련해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경쟁제한적 기업결합규제 조항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인수.합병 (M&A) 으로 1개사의 시장점유율이 50%를 넘거나 상위 3개사의 시장점유율이 70%를 넘을 경우 이같은 M&A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공정거래위원회는 앞으로도 이 규정을 엄격히 적용한다는 방침이어서 빅딜 논의와 상반된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초대형 독과점업체가 탄생하면 외국에서도 문제를 삼아 통상마찰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고 말했다.

특정기업이 순자산의 25%이상을 다른 기업에 출자할 수 없도록 규정한 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제한 규정도 넘어야 할 산이다.

빅딜로 25%를 넘게 될 경우 예외를 인정하거나 차제에 이 규정을 철폐하는 쪽으로 얘기가 되고 있다.

정리해고제 도입여부는 빅딜에서도 문제가 된다.

현행 노동법은 인수한 기업의 인력 정리가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밖에 기업에서 일부 사업부를 떼어낼 때 세제.금융지원을 하는 것을 골자로한 기업분할제도의 도입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도외의 걸림돌

가장 큰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대기업간의 '이해관계' 를 어떻게 조정하느냐 하는 것이지만 이 밖에도 적잖은 걸림돌이 있다.

우선 맞교환하게 될 상호채무보증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큰 숙제다.

상계 (相計) 처리가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만 은행들이 양해해줄지 미지수다.

특히 맞교환하는 기업의 부실정도가 제각각이어서 채무보증을 1대1로 상계처리하는데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여의치 않으면 주력업종에서 채무보증을 떠안거나 완전히 해소한뒤 빅딜을 추진해야 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일각에서는 재정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지만 이는 대기업 부실을 국민 모두가 떠안는 셈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이와 함께 전혀 다른 성격의 기업을 맞교환할 경우 자산가치를 어떻게 계산할지 기술적 어려움이 있다.

[기업문화 극복도 관건]빅딜 이후 이질적 기업문화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도 관건중 하나다.

70년대에 서울은행과 신탁은행이 합쳤다가 지금까지 내부 갈등을 빚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빅딜로 떠안는 과잉설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이 문제는 기존 공장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현실적 어려움뿐 아니라 한국의 과잉설비에 대한 미국.유럽등의 따가운 시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아주 미묘한 사안이다.

◇빅딜의 보완.대안

빅딜을 대기업 쌍방간으로 국한하지 말고 3개이상 기업이 한꺼번에 참여하거나 시야를 돌려 외국기업과의 빅딜을 추진하는 등 가능한 대안을 모두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과정에서 최선의 거래를 선택하려면 어느정도의 검토할 시간 여유도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빅딜외에 M&A를 통한 구조조정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IMF가 요구하는 적대적 M&A를 과감히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한다.

대기업간의 '전략적 제휴' 도 빅딜의 대안으로 꼽을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빅딜이 아니더라도 자동차.조선.반도체.석유화학.정보통신 등 주요 업종에 대한 기술개발.표준화.부품개발.생산.마케팅 등의 협조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도 있다" 고 밝혔다.

대기업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큰 틀이 과다한 차입금을 줄이는 것이라면 정치권과 정부는 이에 필요한 제도를 만들어나가고, 개별기업차원에서의 구체적 해법은 기업에 맡겨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고현곤·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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