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어할 수 없는 자본의 탐욕 칭기즈칸의 땅을 유린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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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피에로 마냥 과장된 표정 뒤에 눈물이 숨어있는 인물을 그려내는 작가가 있다. 문단에선 아직 ‘젊은’ 작가군으로 분류되는 소설가 전성태(40)씨다. 전쟁 세대가 아닌데도 늘 분단 문제를 파고든다. 그의 펜은 세련된 도시가 아닌 시골이나 국경지대, 저 변두리 이방인을 향한다. 세 번째 소설집 『늑대』(창비)에 실린 단편 10편 중 6편은 몽골을 배경으로 삼았다. 한때 대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은 사회주의 체체 그늘에서 막 벗어난,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후진국이다. 세계는 ‘디지털 노마드’란 이름으로 칭기즈칸의 유목민적 삶을 벤치마크하고 있지만, 막상 몽골 자연과 유목 전통은 도로를 닦고 울타리를 치는 자본의 침투 앞에서 와해되고 있다.

표제작 ‘늑대’는 그런 몽골의 변화상을 그려낸다. 몽골 서커스단을 인수해 성공한 한국인 사업가가 검은 늑대를 쫓는다. 그는 “나비 채집가가 사향제비나비 표본을 갖고 싶어하는 이치”처럼 손에 넣어보지 못한 검은 녀석을 포획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때는 그믐. 그믐에 죽음을 당한 영혼은 어둠속을 영원히 헤맨다고 믿는 몽골인은 그 즈음 살생을 금한다. 자본의 힘 앞에서, 마을 촌장과 사원 승려는 사냥을 암묵적으로 허락한다. 금기를 깬 제어되지 않는 욕망은, 또 다른 금기와 맞닥뜨리며 비극을 부른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두만강변에서 생존을 위해 강을 넘는 탈북자들 이야기다. 둘째와 젖먹이 막내는 저세상으로 보내고, 시체와 다름없는 다섯살 난 큰 아이에겐 동생 몫이었을 젖을 물려 목숨줄을 붙드는 어미 모습이 가슴 시리다. 비극을 아름답게 그려낸 여러 단편은 가슴에 무거운 추를 달아놓는다.

‘중국산 폭죽’은 몽골에 교회를 차린 한국인 목사가 주인공이다. 그는 부랑아 아이들을 불러 폐품을 내주었다가 건물 관리인에게 항의를 받는다. 관리인은 부랑아 출입을 금지하기로 한 임대 계약 조항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제 몫의 폐품을 빼앗기는 데 대한 분노였다. 목사 역시 냄새를 폴폴 풍기는 그들을 현관 안으로 들여놓지는 못할 만큼만 선의를 베풀 뿐이다. 최소한의 자비심, 그 경계를 넘어가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기분을 전환하려면 ‘누구 내 구두 못 봤소?’ 등 뒷부분에 배치된 단편들을 읽어야한다. 전날 마신 술 기운에 괄약근이 풀려 화장실에 주저앉은 주인공 영감을 가리켜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암만해도 도로 줏어묵는겨.” 혼혈아처럼 생겨 불이익을 당하던 주인공이 가짜 원어민 영어 강사로 변신하는 ‘이미테이션’ 등은 피식 피식 웃음 속에 묵직한 한 방이 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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