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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불임금 급증 곳곳 항의…9만여명 4천억 못받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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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설이 내일모레인데 언제 밀린 임금을 줄 겁니까.” “조금만 참아주세요. 우리도 두달이 넘도록 임금을 못받고 있어요.” 22일 오후 서울용산구 A건설 사무실. 이 회사 일용직 근로자 20여명이 “3개월간 밀린 노임 1천여만원을 지급하라” 며 직원들과 언쟁을 하고 있다.

직원들은 어려운 회사사정을 설명하며 이해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일용근로자들도 귀향여비 마련 등 딱한 사정을 호소하며 임금지급을 요구했다.

그러나 결국 고성이 오가며 분위기가 험악해져 관리직 金모 (36) 과장과 일용직 高모 (36) 씨가 서로 주먹다툼을 하다 高씨가 이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어 두사람 모두 경찰에 입건됐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기업의 도산이 잇따르고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체불임금이 급증하자 최근 곳곳에서 노사간 시비가 잇따르고 있다.

임금을 받지 못해 민족 최대 명절인 설조차 제대로 쇨 수 없게 된 근로자들의 불만이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농성.시위를 하고 파업을 계획하는가 하면, 물리적 충돌을 빚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경남양산의 한국금속공업 노조는 지난해말 상여금 2억2천여만원과 지난달 임금 3억3천만원이 체불되자 파업 돌입을 경고하며 21일 업주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부산노동청에 고발했다.

전남영암 한라중공업도 고용안정 및 체불임금 청산을 촉구하며 19일부터 조합장 등 노조간부 20여명이 농성에 돌입했다.

회사측은 지난해 10월 상여금, 11.12월 급여 등 1백38억원을 23일까지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자금사정으로 용접봉.철판 등 자재 구입조차 어려운 상황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최근 영업정지를 당한 동서증권 직원 30여명은 22일 오후 서울중구 본사 사무실에 몰려가 퇴직금 지급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21일엔 스웨터 제조업체 S섬유 전사장 朴모 (36.서울도봉구도봉동) 씨가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공장직원 12명과 말싸움하다 항의하는 金모 (37.여) 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상처를 입힌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17일 현재 체불임금은 전국 1천8백58개 5인 이상 사업장에서 모두 4천1백86억원으로 근로자 9만7천4백45명이 제때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4배나 늘어난 액수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19일 설을 앞두고 체불임금 청산과 예방을 위해 전국 지방노동관서에 특별기동반을 편성, 체불임금 조기 청산을 독려하도록 지시했다.

이훈범·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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