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그룹 부도 1년…회생의 불꽃 가물대는 당진제철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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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보그룹이 부도가 난지 23일로 1년이 된다.

당시 재계 순위 14위이던 한보그룹의 침몰과 그 침몰과정처리는 한국경제 추락에 방아쇠를 당겨 한국 경제는 국제통화기금 (IMF) 의 구제금융이라는 미증유의 시련을 겪고 있다.

한보부도 1년 그후의 상황과 한보침몰이 한국경제에 미친 영향을 집중 점검한다.

찌그러진 파이프와 벌겋게 녹이 슬고있는 설비 사이로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는 건축자재들. 황무지 같은 B지구 공사장과는 달리 A지구 철근.열연공장에서는 마치 안간힘을 다하듯 거센 열기와 함께 불덩이같은 쇳덩이가 계속 쏟아져나오고 있다.

부도 1년을 맞이하는 충남 당진의 한보철강 당진제철소에는 회사회생의 희망과 함께 정태수총회장의 과욕이 남긴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여의도의 1.5배 크기인 1백10만평에 자리잡은 당진제철소는 현재 A지구의 봉강.열연설비만이 부분 가동중이며, 코렉스 설비가 들어선 B지구는 97년2월 이후 공사가 완전 중단된 상태다.

부도이후 법정관리에 들어가 3천여명에 달했던 종업원들은 1천3백여명으로 절반이상 줄였으나 6조원이상의 과도한 부채 때문에 아직까지도 회생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3자 인수협상도 지지부진해 포항제철과 동국제강은 A지구에 대해 2조원에 자산인수방식을 제시했으나 채권 은행단이 받아들이지않아 협상이 결렬됐다.

최근 정부와 채권 은행단은 B지구의 코렉스 설비를 해외에 매각하고 열연및 냉연 공장에 대한 임차 경영 방안을 추진 중이나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을 보지못하고 있다.

한보철강의 손근석 (孫根碩) 법정관리인은 최근 서울 민사 지법에 한보의 옛 사주인 鄭총회장을 상대로 회사파탄 책임을 물어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사정 (査定) 재판' 을 신청하기까지 했다.

부도당시 22개에 달했던 한보 계열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동안 ㈜한보 등 5개사가 법정관리 (회사정리절차)에 들어가 사실상 그룹이 해체된 상태며 정상 영업을 하고있는 일부 계열사들도 1조2천억원에 달하는 상호지급보증때문에 정상 회생이 어려울 전망이다.

부도 이후 정태수 (鄭泰守) 총회장이 옥중에서 그룹재건의 의사를 밝히고 일부 간부들이 그룹복원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으나 구체적인 진전은 보지 못했다.

㈜한보는 한때 직원이 2천3백여명에 달했던 인력이 1천6백여명으로 줄어들었으며 최근의 건설경기 부진으로 더욱 고전하고 있다.

고철을 녹여 파는 부산제강소를 운영하는 철강사업본부만이 한달 평균 25억원 정도의 순이익을 올리며 정상가동돼 제3자 인수가 유력시되고 있다.

한보건설은 한보라는 이름으로는 도저히 영업을 할 수 없다며 올 상반기중 유원건설로 이름을 다시 바꿔 독자적인 회생의 길을 모색키로했다.

비교적 회생 전망이 밝은 것으로 평가받는 상아제약은 경영권을 노린 한 개인투자자가 지분을 모아 정씨 일가를 제치고 1대주주로 올라서 향후 경영권 추이가 주목되고있다.

대성목재의 경우는 최근 정종근 (鄭宗根) 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떼 한보건설이 관리하고 있으며 여광개발은 현재 골프장 건설이 중단돼 매각마저 어려운 실정이다.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을 추진했던 동아시아가스는 현재 시추 사업을 위한 추가 자금확보가 여의치 않아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당시 매입했던 사업 주체인 루시아석유의 지분 43% (4천만달러상당) 를 아직까지 그대로 보유하고있어 정씨 일가의 그룹 재건 움직임과 관련, 주목받고 있다.

홍병기·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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