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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추정 환자 모두 건강…지나친 걱정 필요없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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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호 04면

2일 보건복지가족부 브리핑룸에서 질병관리본부 이종구 본부장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신종 플루 감염자 발생을 최종 확인했다고 공식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플루(인플루엔자A/H1N1)가 국내에도 유입된 사실이 2일 최종 확인됐다. 3명의 추정 환자 가운데 최초로 보고된 51세 여성 A씨가 신종 플루 환자로 확진된 것이다.
정부는 확진에도 불구하고 ‘국가재난단계’를 현재의 ‘주의’로 유지키로 했다. 아직도 전염병 확산 단계로 보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국가재난단계는 ‘관심-주의-경계-심각’의 4단계로 구성돼 있는데, 두 번째 단계인 주의는 해외 신종 전염병이 국내에 유입되거나 국내에서 신종 전염병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될 때 발령된다.

신종 플루 확산 어디까지 왔나

삼성서울병원 박승철(건강의학과) 교수는 “신종 플루 환자가 확인됐다고 지나치게 걱정하거나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확진 환자나 추정 환자 모두 현재 매우 건강한 데다 해외 사례를 볼 때도 멕시코 외의 지역에서는 일반 독감에 비해 위험하다고 볼 수 있는 수준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의 인플루엔자 자문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박 교수는 또 “지금까지 보면 우리 정부의 대응 능력은 매우 훌륭하다”며 “오히려 확진 환자가 나온 것을 계기로 국민과 정부가 예방과 방역을 더 철저히 한다면 이번 신종 플루 사태는 의외로 쉽게 넘길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지난달 말 멕시코 등에서 신종 플루 환자가 발견됐을 때부터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도 대응 관리에 자신감을 보여 왔다.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나 조류 인플루엔자(AI)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웬만한 선진국 못지않은 검역과 예방·감시 체계를 갖췄다는 것이다. 실제로 A씨의 신고에서부터 감염 확진 과정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대응이 나름대로 효율적이었던 것이란 평가가 있다.

24일 WHO에서 통보받고 첫 인지
질병관리본부가 멕시코 지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원인 불명의 호흡기 질환을 처음 인지한 것은 지난달 24일 오후 3시쯤.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본부 감염병감시국 직원으로부터였다. 질병관리본부 측은 즉시 보건복지가족부에 연락, 언론용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미국 정부가 캘리포니아와 멕시코에서 신종 플루 환자 7명을 발견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토요일인 다음 날 국무총리실 주재로 관계부처 회의가 열렸다. 발병 지역인 멕시코와 미국 여행자를 대상으로 입국 시 발열 검사가 시작됐다. 일일 상황보고도 개시됐다. WHO가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26일 이런 사실이 국민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7일 멕시코 방문자인 수녀 A씨로부터 보건소에 신고가 접수됐다.

경기도의 한 수녀원에 소속된 A씨는 지난달 말 멕시코를 다녀왔다. 4월 19일부터 25일까지 멕시코시티 남부 지역을 도는 일정이었다. 19일 도착 당시 멕시코시티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할 때 현지인 운전자가 기침과 콧물 등 호흡기 질환 증세를 보였지만 별 관심을 두진 않았다. 그런데 25일 LA를 경유하는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A씨는 오한·무기력·인후통 같은 호흡기 증상을 겪었다. 곧이어 기침도 나왔다. 증상은 비행기 속에서 가장 심했지만, 인천공항에 도착한 26일 오후에는 증세가 상당 부분 완화됐다. 그날 공항으로 마중 나온 같은 시설의 수녀 B씨(44)가 운전하는 승용차로 성당에 도착했다. 함께 미사에 참석하고 저녁식사를 마쳤다. 다음 날 증상은 호전됐지만 멕시코의 전염병 유행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오전에 보건소를 방문, 신고한 것이다.

보건소 신고 통해 첫 추정 환자 발견
보건소는 A씨에 대한 문진 결과 곧바로 ‘의심 환자’로 분류했다. 의심 환자는 당시 기준으로 위험지역을 여행한 지 일주일 이내에 발열·인후통·기침·근육통 등 급성 호흡기 감염 증상이 나타난 사람에 해당한다. 이날 오후 질병관리본부는 A씨에게 역학조사관을 보내 검체를 채취하고 자택 격리 조치했다.

보건당국은 너무나 일찍 국내에서 의심 환자가 발견된 것에 놀라면서도 즉각적으로 정밀검사를 시작했다. 첫 감염 환자로 확인될 수 있는 만큼 검사는 여러 단계를 거쳐 철저하게 이뤄졌다.

우선 이 환자가 기존에 유행하는 계절 인플루엔자에 걸린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신속 항원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B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는 음성이었지만 A형 인플루엔자에는 ‘약한 양성’으로 나타났다.

현재 미국과 멕시코에서 유행하는 신종 플루도 지난겨울부터 유행한 계절 인플루엔자와 마찬가지로 A형이지만 구조가 다르다. ‘약한 양성’은 오히려 신종 플루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어서 보건당국의 긴장 수위는 높아졌다. 당국은 A씨를 수녀원 내에서 격리 생활하도록 하고, 지자체와 검역소 등에 관리지침을 제작·배포했다.

바이러스 유전자 검사 통해 확진
28일 A씨에 대한 유전자 증폭검사의 일종인 리얼타임 RT-PCR 결과가 나왔다. A씨는 ‘추정 환자’로 분류됐다. A형 인플루엔자이면서 지난 시즌 유행한 H1형이나 H3형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플루엔자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미국과 멕시코에서 유행하는 신종 플루 바이러스와의 연관성이 큰 것으로 확인됐다. 당국은 국가재난단계를 ‘주의’로 높였다.

A씨는 경기도 국군수도병원의 특수병동에 격리 입원됐다. 당국은 보건소를 통해 수녀원에 함께 거주하는 이들에게 항바이러스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복용토록 했다.

또 A씨와 비행기에 함께 탑승했던 승객들에 대한 추적 조사에 들어갔다. 외국인 등 일부를 제외한 조사 대상자는 모두 항원검사 결과 음성 반응을 보였다. 검역은 발병 지역뿐 아니라 해외 모든 국가로부터의 입국자로 확대됐다.

30일 또 다른 한 명의 의미 있는 신고가 들어왔다. A씨와 함께 생활해 온 B씨도 독감 증상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추정 환자’로 진단됐다. 사람끼리의 감염(2차 감염)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B씨보다 당국을 더 긴장시킨 것은 또 한 명의 ‘추정 환자’로 진단된 C씨(57)였다. C씨는 해외여행 경험 등 신종 플루와의 연관성을 찾을 만한 조건이 없었다. 그런데도 감염됐을 가능성이 조사된 건 인천공항을 운행하는 버스 운전기사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 버스를 이용한 외국인이나 해외여행객에게서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는 데다 증상이 나타난 후에도 버스를 운전했기 때문에 다른 승객에게 바이러스가 전파됐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당국은 대책본부 수장을 질병관리본부장에서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으로 격상하고 24시간 방역체계에 돌입했다. 정부는 항바이러스제 250만 명분(630억원)과 신종 플루 백신 130만 명분(182억원)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을 긴급 책정했다. B씨와 C씨는 즉시 특수병동에 격리조치하고, 1일 밤늦게까지 C씨의 회사와 소속 버스 등에 모두 방역 조치를 했다.

그동안 A씨의 호흡기 검체 세포에서 분리한 바이러스의 유전자 검사가 진행됐다. WHO가 신종 플루 확진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는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다. 세포에서 분리한 소량의 바이러스를 충분히 배양해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로 샘플을 보내 확인하는 것도 잠깐 고려됐지만, AI가 유행한 후 확보한 기술 수준 등으로 볼 때 국내 확진 검사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다.

A씨에게서 분리한 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은 CDC가 공개한 신종 플루 바이러스의 염기서열 중 결정적인 부분과 99% 이상 일치했다. 우려하던 대로 전 세계에서 14번째이자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신종 플루 감염이 국내에서 처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WHO보다 실질적인 대응 단계
다행인 건 C씨가 신종 플루가 아닌 일반적 계절성 독감 환자로 밝혀진 점이다. 질병관리본부 이종구 본부장은 “보통 1년에 2~3명은 일반적 검사 방법으로는 유형을 확인하기 힘든 바이러스가 분리되는데, 이 환자도 1일까지의 검사에서는 그렇게 나왔기 때문에 ‘추정 환자’로 분류됐던 것”이라며 “결국 일반 독감으로 밝혀졌고 건강 상태도 양호하기 때문에 격리 해제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밀검사가 진행 중인 B씨는 신종 플루 환자로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 4일께엔 검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B씨의 감염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에도 정부는 현재의 국가재난단계를 올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2차 감염이 일어나면 ‘주의’에서 ‘경계’로 올리는 게 보통이지만, B씨는 A씨와 차를 함께 타는 등 밀폐된 공간에서 접촉해 감염된 것이지 보편적인 감염 확산의 유형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이유다. ‘주의’보다 한 단계 위인 ‘경계’는 신종 전염병이 다른 지역으로 전파됐을 때, 마지막 ‘심각’ 단계는 전국적으로 전염병 유행이 확산됐을 때가 기준이다. 이 본부장은 “현재로선 지역 사회에서 신종 플루가 전파되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WHO 측은 지난달 30일 인플루엔자 경보 수준을 대유행(6단계)에 임박한 ‘5단계’로 높였으나, 아직 ‘6단계’로 올릴 계획은 없다고 2일 밝혔다. 또 각국은 국민의 해외여행을 제한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알렸다. 전문가들은 WHO가 이번에 경보 수준을 사망자가 훨씬 많았던 AI 유행 때보다 더 높은 ‘5단계’로 높인 것은 두 대륙 이상에서 2차 감염과 유행이 나타나는 등의 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국내의 대응 체계가 좀 더 실질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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