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칼럼]다이어트와 거식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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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TV를 보면 국제통화기금 (IMF) 시대를 이기는 지혜들이 속출한다.

온갖 자린고비 작전들이 감탄스럽게 전개된다.

과소비.낭비에 대한 준엄한 고발도 잇따른다.

그러나 개중에는 지나친 것들도 없지 않다.

휴일에 외식 한번 나온 것, 스키타러 간 것이 비난받는 때도 있다.

술집에 간 것은 큰 '범죄' 다.

"이런 때 이렇게 해도 되겠느냐" 고 죄인 다루듯 추궁하면 당사자는 카메라 앞에서 쩔쩔맨다.

외제 (外製)에 대한 반감은 거의 편집증적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LA 타임스지는 "공포를 느낄 정도" 라고 크게 보도하고 있다.

서울에 와 있는 외국회사나 외국인들은 겁이 날 지경이라는 것이다.

어떤 유럽인은 한국인의 민족감정을 "마치 나치독일과 같다" 고 걱정하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수모를 당한 이도 있다고 한다.

외제차 몰고 다니다가 봉변당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확산돼 이젠 심지어 국산 대형차에 훼손을 가하는 일도 벌어진다고 한다.

하기야 금 모아 수출하자는 창구에 장사진이 쳐진 것을 보면 수긍이 간다.

그러나 문제를 너무 반외세 민족감정으로만 풀어가는 것은 단선적이다.

우리 것이 거의 없던 결핍시대엔 무조건 쓰지 않고 절약하는 것이 애국일 수 있다.

그러나 3차 서비스산업이 산업의 대종을 이루고 있고 무역의존도가 절대적인 요즘엔 무턱댄 반외제나 안쓰기운동이 꼭 잘 하는 일은 아니다.

아끼기만 해서는 오히려 서비스산업이 마비되고 그것이 차례로 전산업에 연쇄효과를 미치는 악순환을 만들고 만다.

대한상의 (大韓商議)가 오죽하면 '제대로 쓰자' 는 표어를 들고 나왔겠는가.

허리띠 졸라매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졸라매면 숨이 막혀버리는 것이 우리의 산업구조고 사회구조인 것이다.

지난날 미국의 유명한 오누이그룹 카핀터스의 여성멤버가 지나친 다이어트로 거식증 (拒食症)에 걸려 죽은 것처럼 지나친 허리띠 졸라매기는 오히려 우리 산업에 거식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

기업의 연쇄도산과 정리해고를 눈앞에 두고 불안감이 팽배해 있는 지금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발적인 절약을 하게 된다.

또 지나치게 흥청거렸던 거품소비에 대한 반성적인 절제가 마땅하기도 하다.

그런데 그 근저엔 또다른 요소들이 숨어 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가진 자들에 대한 평등주의적 (平等主義的) 증오심 같은 것이 도사리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 것이 지나치게 확산되고 왜곡되면 계급적인 반감으로 확대되지 말란 법도 없다.

요즘 도마 위에 오른 재벌의 구조개혁문제만 해도 그렇다.

노사정 (勞使政) 위원회에 참여한 노동자대표는 대뜸 재벌총수의 재산환수와 퇴진을 들고 나와 그것을 정리해고 수용의 전제조건으로 삼으려고 한다.

이미 IMF측이 내놓은 조건의 이행만으로도 사실상 재벌이 분해될 판인데 거기에 감정적인 조건들을 얹으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총수의 재산헌납 방안이 포함되지 않는 구조조정 계획은 무조건 '미흡' 한 것으로 간주돼 버린다.

물론 재벌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 터무니없는 차입경영, 권위주의적 행태 등을 문제시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동안의 정경유착 (政經癒着)에 대한 거부심리로 인해 기업들이 얻은 이득을 부당한 특혜로 비난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기업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시장경제의 원칙마저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치달으면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고 만다.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이 사회복지의 첫발이듯 민간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근간이다. 그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사회의 밑동이 흔들리게 된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휴렛팩커드의 사훈 제1조는 '이익은 기업의 사회에 대한 최고 공헌' 이라고 못박고 있다.

물론 그 이익이 정당한 방법을 통해 창출됐는가, 정의롭게 사용됐는가를 따질 수는 있다.

그러나 예일대 창설자가 노예를 팔았던 경력이 있다고 해서 굳이 예일대를 허물어뜨리라고 요구하는 것이 타당한 것은 아니다.

지나친 다이어트가 거식증을 일으키듯 편벽된 평등주의는 자유로운 기업활동에 대한 거식증세를 일으켜 자칫하면 국제적 고립을 초래하고 계급적인 갈등을 조장할 수도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김영배<미디어문화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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