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사회학…유행가 참맛은 2절서 우러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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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노래는 흔하다.

그러다 못해 넘친다.

노래방의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서 모두가 '카수' 아닌가.

멜로디의 높낮이를 조절해 가며 순간순간 바뀌는 자막을 따라 2절까지. 하긴 10대들은 그 순간 '카수' 의 생명을 끊어 놓는다지. "어디 감히 2절을" 하며…. 점수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선 많은 곡을 한명이라도 더 부르자는 거다.

그런데 그 '짓' 은 노래방이 우리에게 새롭게 던져준 '2절 문화' 를 통째로 부인하는 것이다.

덩달아 간주에 맞춘 율동도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되새겨본 사람은 다 안다.

때론 신선하고 때론 구구절절히 자신의 심사를 묘사한 듯한 2절 노랫말 - .그래서 2절을 논하자는 거다.

누구나 부를 줄 아는 애창곡이면서도 '한참 흘러간 노래' 로 천대를 받는 '홍도야 우지마라' . “사 - 랑을 팔고사는/꽃바람 속에…” 로 시작한다.

하지만 짧은 간주 뒤에 이어지는 가사를 떠올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구름에 싸인 달을/너는 보았지/세상은 구름이요 홍도는 달빛/하늘이 믿으시는 네 사랑에는/구름을 거둬주는 바람이 분다” (작사 이서구) . 젓가락으로 반주를 맞추며 1절만 되풀이하던 과거 회식자리에서는 새길 수 없는 감회가 물씬하다.

역시 노래방 문화는 다르군. 다시 '비내리는 호남선' 2절 - “다시 못올 그 날짜를 믿어야 옳으냐/속을 줄을 알면서도 속아야 옳으냐/죄도 많은 청춘이냐 비내리는 호남선에/떠나가는 열차마다 원수와 같더란다” (손로원 작사) .이번엔 '전선야곡' - “들려오는 총소리를/자장가 삼아/꿈길속에 달려간/내고향 내집에는/정안수 떠놓고서/이 아들의 공 비는/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오/쓸어안고 싶었소” (유호 작사) . 해방과 6.25를 전후한 대중가요의 노랫말에는 민족적 애환이 한편의 시 (詩) 처럼 스며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밀어닥친 왈츠.탱고.맘보.부기우기.트위스트 등 양풍 (洋風) 음악에 대한 저항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60년대도 거의 비슷한 분위기로 이어진다.

잠시 KBS '가요무대' 자문위원이자 대중가요 연구가인 김점도 (63) 씨의 회상. “50년대까지만 해도 3절이 기본이었다.

한면에 한곡을 싣는 SP판 시절이라 가능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60년대 들어 한면에 4곡씩 들어가는 LP판이 나오고 방송을 타기 시작하면서 편의상 2절로 줄어들게 됐다.

이상하게도 2.3절에 좋은 가사들이 더 많았다.”

가령 '홍도…' 의 3절은 이렇다.

“홍도야 우지마라/굳세게 살자/진흙에 핀 꽃에도/향기는 높다/네 마음 네 행실만/높게 가지면/즐겁게 웃는 날이/찾아오리라” .완결의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다는 평이 나올 만하다.

70~80년대엔 사회에 대한 풍자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우회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푸르던 나무잎이/한잎 두잎 떨어져/연못 위에 작은 배 띄우다가/깊은 물에 가라앉으면/집잃은 꽃사슴이 산속을 헤매다가/연못을 찾아와 물을 마시고/살며시 잠들게 되죠…” (김민기 작사 '작은 연못' ) . 또 다른 곡 '우정' - “바람이 몰아치고 파도가 밀려와도/마음을 가다듬고 가슴을 펴다오/추운 겨울이 오면 봄이 가깝다오/검은 구름위에도 태양이 빛난다오…” (길옥윤 작사) . 이러다가 90년대 들어서는 랩.힙합.레게 음악의 영향으로 절 (節) 의 개념은 근본적으로 파괴되고 만다.

“랩이 주는 가장 큰 특징은 하고 싶은 말을 한꺼번에 직설적으로 다 표현한다는데 있습니다.

곡조가 분절되면서 가사가 곡조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된 것도 가사의 함축성을 떨어뜨린 주요한 원인중 하나죠.”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39) 씨의 말이다.

그 어렵고 힘들던 시절, 설움과 한을 노래에 담아 노래로 풀던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할아버지요 아버지가 아니던가.

그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벌여놓은 '2절 파괴' .이제 달라진 세상을 따라 복고성향을 띨지도 모른다.

호주머니도, 마음도 꽁꽁 얼어붙었지만 혹시 노래방에 가서 회포를 풀 기회라도 생긴다면 '행복의 나라' 2절쯤은 빼먹지말고 불러 볼 일이다.

“…아하 나는 살겠네/태양만 비친다면/밤과 하늘과 바람안에서/비와 천둥의 소리/이겨 춤을 추겠네/나도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작사 한대수)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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