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은 지금 '雪獄'…도로마다 주차장 방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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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영동지방에 내린 폭설로 14일 오후부터 영동고속도로에 고립된 차량의 탑승객들은 히터를 틀어놓은 채 연료가 고갈되지나 않을지 걱정하며 밤을 지새웠다.

서울~강릉 사이를 운행하던 고속.시외버스.화물차.행락차량 등 2천5백여대의 차량은 도로나 대관령휴게소 등지에서 발이 묶였다.

날이 밝자 일부 운전자들은 도보로 눈길을 뚫고 대관령 상.하행선 휴게소를 찾아 빵과 우유 등을 사가지고 돌아가는 등 곤욕을 치렀다.

동부고속 기사 전성인 (全成仁.49) 씨는 “승객 41명을 태우고 오후5시 서울을 출발, 강릉으로 가던 중 오후7시30분쯤 폭설로 오도가도 못하게 돼 모두 함께 히터를 틀고 밤을 샜으나 추위와 용변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며 “날이 샌 뒤 휴게소까지 1.5㎞를 걸어가 아침을 먹었는데 승객 가운데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학생.직장인들은 날이 밝자 강릉쪽으로 걸어서 출발했다” 고 전했다.

이 때문에 대관령 상.하행선 휴게소에는 우동.김밥.빵.음료수 등 3천6백여명이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이 확보돼 있었으나 우유 등 일부 품목은 동이 났다.

대관령휴게소 직원 김금실 (金金實.21) 씨는 “가장들이 가족을 차에 남겨둔 채 눈길을 걸어와 식품과 기름을 사갔으며 난방이 되는 휴게소 식당에는 가족 단위의 대피객 1백여명이 모여 있어 대피소를 방불케 했다” 고 말했다.

일부 운전자들은 휴대폰으로 강릉 등지에 있는 친지들에게 전화를 걸어 마실 물 등을 갖다줄 것을 호소했으나 고속도로 차량통행이 금지된데다 차량이 도로에서 뒤엉켜 대관령 초입에서 발만 동동 구르기도 했다.

경찰과 한국도로공사는 15일 오전7시쯤부터 대관령구간에 대해 모든 차량의 운행을 전면 통제하고 30대의 제설차량을 동원해 제설작업을 벌였으나 뒤엉킨 차량들을 한대씩 이동시켜야 하는데다 강풍을 동반한 함박눈이 계속 내려 어려움을 겪었다.

대관령휴게소 오승원 (吳昇源) 소장은 “어젯밤 폭설소식에 비상출근을 시도했지만 이미 길이 끊겨 있어 산 밑에 차를 두고 눈길을 걸어 출근했다” 며 “도로공사 대관령지사에서 중장비를 투입해 강릉쪽으로 내려가는 길의 눈을 치우고 있으나 눈과 뒤엉킨 차량 때문에 역부족인 상태다.

다행히 전기.전화공급은 이상이 없고 휴게소의 식량 및 유류 비축량도 며칠간은 문제가 없을 정도” 라고 전했다.

한편 강릉시강동면임곡리 등 외딴 마을을 운행하는 17개 노선의 시내버스 운행이 15일부터 중단돼 30여개 마을이 고립돼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영동지역 주민들도 비상에 들어갔다.

평창군 도암면사무소의 경우 횡계지역 상점들로부터 우유 5백여개, 빵 8백여개의 재고분을 파악해놓고 고립 장기화에 대비하고 있다.

평창군도암면횡계3리 유영환 (40) 씨는 “10년만에 가장 큰 눈” 이라며 “전기.전화가 들어오고 있어 큰 불편은 없지만 환자가 생길까봐 걱정” 이라고 말했다.

김기봉·홍창업·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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