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축구 신화 창조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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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필승, 그리스"
그리스가 2004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4)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스는 5일 새벽(한국시간) 포르투갈 리스본의 루즈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결승전에서 후반 12분 안겔로스 카리스테아스의 결승골로 개최국 포르투갈을 1-0으로 누르고 대회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그리스의 우승이 확정되자 아테네 시청 앞 코치아 광장에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광란의 밤을 보냈다. [아테네=강정현 기자]

4일 자정(현지시간)이 가까워 오자 아테네 시청 앞 코치아 광장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번져갔다. 광장을 가득 메운 3만여 시민들은 가로.세로 10m짜리 대형 전광판에서 쏟아내는 그리스 축구 대표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후반 12분 바시나스의 코너킥이 바나나처럼 휘어 골문 앞으로 날아든 순간 장신(1m91㎝) 스트라이커 카리스테아스가 솟구쳐 올랐다. 카리스테아스가 내리찍은 헤딩슛이 포르투갈 골네트를 가르는 순간 아테네 전역은 시민들이 한꺼번에 내지른 함성에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마치 2년 전 한.일 월드컵 때 시청 앞 광장의 열기를 느끼게 했다. 이번엔 '붉은 악마'가 아니라 '푸른 악마'였다.

경기 종료 5분을 남겨 놓자 환호성은 토네이도처럼 더 크게, 더 세게, 더 높이 쌓여갔다. 모두 일어섰다. 두 손을 흔들며 떠나갈 듯 "헬라"를 외쳤다. 외국에서 부르는 '그리스'가 아니라 고대부터 이 지역을 지칭했던 '헬라'. 철학과 과학.문화가 넘쳤던 헬라의 후예임을 자부하는 거대한 인간 용광로였다. 광장 한 쪽에 서 있는 소크라테스의 동상만이 말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심판의 종료 휘슬이 울리자 시청 옥상에서는 화려한 축포가 20여분간 터졌다. 그리스 축구가 유럽 축구의 변방을 넘어 중심에 우뚝 선 순간 자정을 넘긴 아테네의 밤도 새로 시작됐다. 나팔소리에서부터 자동차 경적소리, 질주하는 오토바이의 굉음까지 온갖 소음이 도시를 휘감았다. 그리스 국기를 온몸에 두른 인파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골목에서 쏟아져 나왔다. 광장에서 가족과 함께 목이 터져라 응원했던 주부 아르기로 구키는 "우리는 코브라처럼 강팀을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해냈다. 꿈이 이뤄졌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코치아 광장의 인파가 인근의 오모니아 광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인간파도가 밀물처럼 쓸려 갔다. 오모니아 광장에는 족히 100만명은 됨직한 사람들로 꽉 차버렸다. 그리스 말로 '의견의 일치'를 나타내는 오모니아에는 그리스인들의 자부심과 흥분이 말 그대로 하나가 돼 있었다.

오모니아 광장뿐이 아니었다. 국회의사당 앞 신다그마 광장 등 아테네 시내 곳곳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인파로 넘쳐났다. 축제는 새벽까지 계속됐다. 현지의 4~5개 방송사들은 밤새 흥분의 현장을 생중계했다. 유로 2004 우승 열기를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아테네 올림픽으로 승화시키려는 모습도 보였다. 알파 TV 등에서는 "이제는 올림픽이다. 국민의 자부심과 사기가 높아져 올림픽 준비에 박차를 가하자"는 내용을 전하기도 했다.

아테네=김종문 기자<jmoon@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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