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로는 여기다]임우기 솔출판사 대표…상반기 고급잡지 2종 창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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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올해로 개업 8년째를 맞은 솔출판사 임우기 (42.문학평론가) 대표. 그는 업계에서 뚝심과 고집의 출판인으로 통한다.

그간 3백여 종을 '출산 (出産)' 했지만 변변한 '효자' 는 별로 없다.

지난해 낸 1백여 종 가운데 많이 나간 책이라야 3만~5만여 부. 그나마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그저 좋은 책을 많이 냈다는 소리를 듣는다.

“잘 팔리는 책을 만들 재주가 없다” 고 털어놓을 정도로 베스트셀러와는 거리가 먼 길을 에돌아왔다.

그러나 출판에 대한 자존심만은 누구 못지않다.

더구나 출판계 전체가 IMF로 아우성대는 요즘 그는 당돌하게도 (?) 집을 은행에 담보로 잡혀가며 공격적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문제는 전문성 확보입니다.

소수의 독자라도 그들의 지적 갈증을 구석구석 달래주는 출판문화를 꽃피워야 합니다.”

물론 그의 자신감은 돈키호테적 망상이 아니다.

부수는 적지만 오랫동안 팔리는 책에 무게를 실어와, 그동안 나온 책 중에서 90% 가량이 '살아 있다' 는 체험에서 나온 확신이다.

일순간에 팔렸다가 이내 '죽고' 마는 흥행.인기물을 경계한 결과 얻은 소득이랄까. “모두 위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낙담할 이유는 없어요. 어려울수록 출판인이나 지식인의 짐이 무겁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독자들에게 새로운 문화적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 중요하지요.” 그는 해법의 가닥을 세계와 동양에 대한 근본적 성찰에서 찾고 있다.

상반기 안에 이를 동시에 겨냥한 잡지 두 종을 창간할 예정. 하나는 유네스코와 공동으로 세계의 문화.자연유산을 심층분석한 '유산' (격월간) 이요, 또 다른 하나는 한.중.일 등 동아시아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 고급교양지 (계간.이름 미정) 다.

그리고 지난해 시작한 한국학총서를 이어가는 한편 올해엔 중국학 문고와 중국 현대고전시리즈도 선보일 계획. “IMF체제는 우리가 세계자유무역체제에 완전히 편입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럴수록 문화의 역할과 기능이 중요하죠. 우리의 현재 위치에 대한 냉엄한 점검을 시도할 작정입니다.”

그는 출판계의 과제를 '신 (新) 실용주의' 라는 단어로 요약했다.

베스트셀러 위주의 한탕주의, 외서 (外書) 를 둘러싼 과다한 로열티 경쟁, 대형서점에 대한 지나친 할인출고, 출판사 간의 편가르기 등 자해적 (自害的) '거품' 을 걷어내고 진정 독자들과 함께 하는, 즉 독자들이 두고두고 들춰보는 양서 (良書) 출간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목청을 다듬었다.

그러다보면 독자층도 자연스레 확대된다는 게 그의 지론. “소수 전문가를 위한 학술서를 뜻하진 않습니다.

대중서라도 찰나의 흥미.유희 차원을 넘어 독자들 삶에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야 합니다.”

기획의 다변화, 내용의 충실성이 출판계의 살 길이라는 다짐이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책 역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문화 저변의 토양을 든든하게 다져야 한다는 것. 그는 돈을 좇는 출판이 아닌, 지식산업 첨병으로서 출판이란 정석 (定石) 을 더욱 되새길 때라는 말로 결론을 대신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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