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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스타일리스트]사이버 시인 이은…웹진 만들어 '소리없는 아우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그의 시는 낯설다. 적어도 '시=서정성'라는 등식을 떠올리는 독자들에게는 그렇다. 그는 이은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본드걸·애시드 보이(acid:환각제 LSD를 뜻함)·예로우왕국·갱스터케이 등의 제목이라니… 시어 역시도 거침없이 내뱉는 식이다. 정녕 그런가. 마약.섹스.폭력.자살 그리고 록음악의굉음-. 비록 일상은 아닐지라도 우리들 모두 또는 그의 현실이고 관심사다. 그는 자신의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이 스물일곱살 남자에겐 시란 무엇일까.

“음악이나 영화를 비롯한 모든 문화는 사람이 즐기는 매체에요. 시도 예외가 아니죠. 왜 대중적인 시를 쓰면서도 일말의 반성을 끼워넣어야 하죠? 시는 반성문이 아니잖아요. 초등학교 때 일기쓰던 생각을 해보세요. 저학년일 때는 '참 맛있었다' '정말 재맸었다' 식으로 솔직해요. 그러다 한 5학년쯤 되면 슬며시 반성하기 시작해요. 남들을 의식하는 거죠 . 그때부터 일기는 일기가 아니에요. 반성은 말로 표현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죠. 대립하는 세계를 끊임없이 서로 충돌시키면서 나오는 새로운 것들에서 자연스럽게 '깨달음'을 기대할 수 있잖아요.”

활동무대는 인터넷. 지난해 11월 x-zine(http://www.x-zine.com)이라는 문화전문 웹진을 손수 만들어 '펑크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했다. 그 호칭은 그룹 너바나의 자살한 리더 커트 코베인의 별명에서 딴것.

“웹진을 만든 건 기존 매체와 제 시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문학잡지에 발표하려면 어느새 '자기검열' 이 되거든요.” 그렇다고 그 흔한 사이버 객기로 여기진 마시라. 고교 졸업 후 출판사에서 일하며 쓴 시가 무려 수백 편. 92년 '현대시세계' 신인공모에 본명 김태형으로 '히말라야시다에게 쓰다' 가 당선되면서 등단해 '록큰롤 헤븐' (95년 민음사 발행) 시집도 갖고 있다.

지금은 초록배카툰즈라는 정보제공업체에서 일하며 온라인에서 활동할 문우 (文友) 를 수배 중이다.

“당분간은 김태형이라는 시인은 없어요. 이중 생활을 하는 거죠. 하고 싶은 얘긴 같지만 방식은 서로 달라요. 어쨌든 지금은 신 내린 무당처럼 이렇게 거침없이 중얼중얼하는게 좋아요.”

'진흙속에서 뒹구는 보석(泥銀)'이라는 뜻을 지닌 필명처럼 그가 쏟아놓는 요설 속에 반짝거리는 비판 의식이 담겨진다면 이 젊은 시인의 시가 영 생경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글=기선민 기자·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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