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재벌정책]3.기업소유·지배구조…경영 감시 장치 절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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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기업 소유.경영 지배구조는 나라마다 다르다.

소유.지배구조에도 각국의 다양한 정치.사회.문화적 전통과 경험, 정서 등이 녹아 들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의 소유.지배 구조에 정답은 있을 수 없다.

지금은 구미식의 전문경영인 체제와 고배당 등 주주의 권익강화가 최선의 모델로 여겨지고 있지만 한때는 소유.경영이 일체화된 한국식 오너체제가 의사결정의 효율성 면이나 장기적 투자여력의 확보란 측면에서 주목대상이 된 적도 있었다.

단기간에 경제발전을 이룩한 한국의 경우 그리 오래지 않은 경험인 '왕조 (王朝) 시대의 가부장적 질서' 가 깊게 배어 있다.

기업의 모든 권한이 최대주주며 최고경영자인 오너에게 집중돼 있다.

이같은 수직적 구조는 밀어붙이기식 경제발전이 이뤄지던 시기에는 나름대로 효율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수평적인 견제.감시 기능의 부재는 기업 규모가 커지고 국제적인 경쟁에 노출되면서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기업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경영을 감시.견제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기업평가의 잣대가 되어야 할 주식값은 개별기업의 내재 (內在)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기업인수.합병 시장도 활발하지 않다.

또 금융기관이나 기관투자가 등 '이해 관계자' 의 역할도 미미하다.

오너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회사안에 ▶소액주주의 권익을 더욱 보호하고 ▶이사회.감사의 독립성과 기능을 강화하는 노력이 지속돼야 할 것이다.

회사 외부에서의 경영규율을 위해서는 ▶기업인수 시장을 활성화하고 ▶투자자로서 금융기관의 역할이 강화돼야 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 (IMF) 의 요구가 없다 하더라도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견제.감시 기능을 활성화하며 차입경영 체질에서 벗어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오너에 의한, 오너를 위한, 오너의' 경영체제를 개선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소유.지배 구조가 아무리 선진국의 그것과 다르다 해도 이는 한국적 여건에서 나름대로 최적의 적응노력을 펼쳐온 결과란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만큼 새로운 제도의 이입 (移入) 은 신중해야 하며, 기업이 새로운 변화에 자발적으로 선택.적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

서두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기업도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IMF뿐 아니라 새 정부의 지도자.근로자도 기업, 특히 재벌의 변신을 고대하고 있다.

스스로 변할 것이냐, 아니면 변신을 강요당할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기업이 나갈 길은 자명하다.

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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