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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KCC “적장이지만 … 이상민 아직도 내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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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상민(37·사진)이 삼성으로 이적한 지 2년이 됐지만 KCC의 용인 마북리 합숙소에는 아직도 이상민의 방이 있다. 정상영 KCC 명예회장은 이상민을 떠나 보내며 “잠시 다녀온다고 생각하라. 여기가 너의 팀”이라고 위로했다고 한다.

이 팀의 정찬영 사무국장은 27일 “이상민은 언제라도 다시 데려오고 싶고 은퇴 후엔 KCC의 코칭 스태프가 될 우리 선수”라고 말했다. 이상민이 떠난 후 KCC엔 그가 달던 11번을 단 선수가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KCC는 삼성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상민이 은퇴하면 ‘11번’ 영구 결번은 당연히 10년 동안 활약한 KCC(전신인 현대 포함)에서 해야 맞다고 여긴다.

6, 7차전만을 남긴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서 적장으로 활약하는 이상민을 보는 KCC의 시각은 이렇다. 한때 조조의 위나라 캠프에서 지내던 관우를 바라보는 유비와 장비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상민의 마음은 옛 주군을 그리워하는 관우와는 다른 것 같다. 오히려 배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이상민이 농구 명가였던 현대의 최고 적자(嫡子)였기 때문이다. 추승균과 조성원도 간판스타로 활약했지만 이상민 같은 진골은 아니다. 이상민은 농구를 매우 좋아했던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반드시 잡으라고 지시한 선수다. ‘현대=이상민’이었고 ‘이상민=현대’였다.

그러나 현대 그룹이 분화되면서, 농구팀이 작은집인 KCC로 넘어갔고 이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KCC의 정상영 명예회장은 용산고 후배인 신선우 감독에 이어 역시 용산고 출신 허재 감독을 사령탑에 앉혔다.

허 감독은 현대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KCC로 와서 이상민과 호형호제했지만 길지는 않았다. 허 감독은 삼성에서 서장훈을 데려오면서 추승균과 이상민 중 하나를 보호선수에서 제외해야 했고 이상민을 버렸다. 당연히 명예회장의 사인이 난 사안이어서 이상민의 충격은 더 컸다고 전해진다.

KCC 프런트는 “이상민이 현대 색깔이 워낙 강한 선수여서 삼성이 데려가지 않으리라 예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 이성훈 사무국장은 “이상민을 안 데려갈 테니 신인 드래프트권을 달라는 제안을 했는데 KCC가 거부했다”고 했다.

당시 삼성 안준호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상민 형을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추승균이 이제 팀의 주인이다. 추승균은 챔피언전 MVP를 노리고 있다. 허 감독도 기자들에게 “승균이가 MVP감”이라고 추천하고 있다.

이상민도 사력을 다하고 있다. 이적 후 KCC와의 첫 경기에서 26득점에 6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하면서 수퍼맨처럼 활약했던 이상민은 이번 챔피언전에서 더 활활 타오르고 있다. 허리가 아파도 출전하고 경기 중 들것에 실려 나가도 불사신처럼 다시 코트로 들어왔다.

관우는 유비와 장비의 부름에 조조 캠프를 박차고 나왔다. 그러나 이상민은 사정이 다르다. 그가 허재 감독, 추승균과 도원결의를 맺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상민에게 이번 승부는 그의 농구인생의 명예를 건 전투다. 그가 KCC 진영을 무자비하게 유린하고 전주에서 우승컵을 삼성에 바친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KCC는 “내 사랑 상민”을 노래할까.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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