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문명과 질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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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르카디아는 고대 그리스에 존재했던 지명이다.

아르카디아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돼 목가적 분위기에서 살았다.

시인 헤시오도스는 아르카디아를 '악.고역 (苦役).질병에서 해방된 곳' 이라고 찬양했다.

서양문학에서 아르카디아는 이상향 (理想鄕) 을 의미한다.

고대인은 건강했다.

당시도 질병이 있었지만 지금같은 치명적인 질병은 없었다.

의학사 (醫學史)에선 고대인들이 건강했던 이유를 소수집단이 수렵.채취생활을 했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자주 이동하며 살았기 때문에 오물이 적었고 이로 인한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그들이 가축을 기르지 않은 데 있다.

정주 (定住) 와 함께 농업을 시작하면서 가축을 기르고 그로부터 노동력과 식량을 얻으면서 짐승들이 가지고 있던 병균들이 사람에 옮겨간 것이다.

사람은 65종 (種) 질병을 개와 공유 (共有) 하고 있으며, 소.양.염소.돼지.말.닭과도 비슷한 숫자의 질병을 나눠가지고 있다.

결핵과 천연두는 소, 감기는 돼지.오리.말, 홍역은 소.개로부터 오래전 사람에게 전염됐다.

그리고 고양이.개.오리.쥐.도마뱀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식중독의 원인인 살모넬라 박테리아를 전염시킨다.

짐승의 배설물에 오염된 물을 마시면 콜레라.바이러스성 간염.디프테리아 등에 걸린다.

또 식량을 쌓아둔 곳간에서 쥐.벌레들이 진을 치고 살면서 오염시킨 식량을 섭취한 사람은 티푸스 등 전염병과 위장장애를 일으킨다.

기생충은 아예 사람 몸속에 들어가 공생 (共生) 한다.

이같은 맥락에서 보면 최근 크게 문제가 된 영국의 광우병.홍콩의 조류독감이 소와 닭을 통해 사람에게 전염됐다는 사실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의학사학자들은 광우병과 조류독감은 동물과 사람간에 오랜 세월을 두고 병원체를 주고 받아 온 교환관계의 최근 형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지난해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홍콩인들이 두려워한 것은 중국의 사회주의였다.

그러나 지금 홍콩이란 '황금알을 낳는 거위' 를 죽이는 것은 조류독감이라는 괴질 (怪疾) 이다.

홍콩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중국이 아니라 닭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모든 질병은 문명의 필연적 부산물이며 발전을 위해 치르는 값비싼 대가 (代價) 임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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