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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기획] 청와대 고강도 내부감찰 100일 … 요즘 관가에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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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앙부처 A부이사관은 요즘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다. 그는 “정부 덕분에 자기 계발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골프 매니어다. 싱글에 육박하는 실력도 자랑한다. 현 정부 들어 묵시적인 골프 금지령이 내렸지만 그린을 잊을 수 없었다. ‘찍힐 각오’를 하고 주말마다 다녔다. 그런 A부이사관마저 최근 골프장에 발길을 끊었다. 내부 감찰의 서슬이 너무 시퍼레서다. 최근 관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다. ‘청와대 행정관 성매매’의 여파로 지난달 30일 청와대 감사팀이 ‘100일 특별감찰’을 선언한 게 시작이었다. 그 이후 감찰의 칼바람은 전체 공직사회로 불어닥쳤다.

◆‘골프 불문율’과 구내식당=최근 고위 공무원들 사이에는 ‘몰래 골프 불문율’이라는 게 생겼다. 골프 약속을 깨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는 경우의 대처 요령이다. ▶내 차는 몰고 가지 않는다 ▶‘만남의 광장’ 등 위험 장소에서 일행과 만나지 않는다 ▶골프 클럽은 일행 차에 두고 옷만 들고 다닌다 ▶경기 중 상호 호칭은 ‘사장’으로 통일한다 등이다.

그러나 이런 불문율에 따라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공무원은 드물다. 대부분 골프는커녕 식사 약속도 꺼릴 만큼 몸을 움츠린다. 서울시의 일부 기관이 들어가 있는 충정로청사의 구내식당에서는 평소 5분 걸리던 대기 줄이 10분으로 늘어났다. 한 초급 공무원은 “평소 저녁 시간엔 보기 힘들던 과·국장급 간부들의 얼굴도 자주 보인다”고 전했다.

부서 전체 회식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일부 기관에서는 매주 초 “최근 감찰이 진행 중이라는 얘기가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라”는 지침이 내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런 분위기 탓에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인근 한정식집은 울상이다. 비교적 고가인 S·J 등 유명 한정식집 네 곳을 중심으로 출입 자제령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고위 공직자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대신 부서 회식이 있거나 업무상 피할 수 없는 약속일 때는 인근 삼겹살집을 찾는다.

◆“범죄자 취급” 볼멘소리도=최근 경기도의 한 지방 세무서에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소위 ‘암행감찰반’으로 불리는 감찰 전담 기구다. 이들이 돌아간 뒤 세무서 직원들은 “제대로 설명도 안 해 주고 서류를 뒤져 불쾌했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비위정보 전담팀’을 꾸리는 등 자체 감찰을 강화하고 있는 국세청은 지방 출장 때 자체 감찰팀을 몰래 따라 붙이기도 한다. 국세청 직원이 만나는 사람을 관찰하고,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뒤를 캐는 식이다. 한 7급 국세청 직원은 “ 예비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라며 “사고는 높은 데(청와대)서 치고, 손가락질은 우리가 당하는 격”이라고 불평했다.

권력 기관인 경찰의 분위기도 뒤숭숭하다. 서울지방경찰청의 풍속 담당(생활질서계) 직원을 전부 물갈이한다는 소문 때문이다.

감찰 국면의 빌미를 제공했다지만 청와대 내부의 불만도 적지 않다. “눈치가 보여 외부 사람을 못 만나다 보니 보고서 쓸 내용이 없다”(한 행정관)는 얘기도 나온다. 일각에선 “포털 사이트에 ‘청와대’만 쳐도 연관 검색어로 ‘행정관 성매매’가 뜬다. ‘행정관’이란 명칭부터 바꿔 달라”는 웃지 못할 하소연도 들린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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