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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외환 '관리'에서 '시장'으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외환관리법을 폐지하겠다는 것은 종전에는 법과 행정 재량 (裁量) 이 '관리' 해 왔던 외환 수급과 환율 결정을 이제부터는 완전히 '시장 (市場)' 에 맡기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말 원화 추락을 경험하기 전까지 우리나라 원화 환율은 제한된 소폭의 범위 안에서만 변동될 수 있도록 '관리' 돼 왔다.

시장이 아니라 재경원장관이 그 '필요' 유무를 떠나 항상 '관리' 하는 체제를 유지해 온 것이다.

그 후 IMF 구제금융협약이 맺어지면서 환율변동폭 제한은 폐지됐다.

환율이 자유변동제로 이행한 이상 재경원장관이 '필요' 에 따라 환율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법4조) 을 핵심으로 한 외환관리법은 폐지되는 것이 당연하다.

환율은 원화의 외화에 대한 가격이다.

가격이 시장에서 자유로 결정되는 것을 허용한다면 당연히 그 수급의 흐름도 시장의 수요.공급에 맡겨야 한다.

가격은 시장에 맡기고 수요와 공급은 정부가 관리한다는 것은 오히려 지금 같은 '경제붕괴' 상태를 기약 없이 연장시킬 위험이 있다.

더구나 무역자유화와 자본자유화가 완결된 지금 정부에 의한 외환관리는 백해무익 (百害無益) 이다.

지금까지는 '귀한 외화를 낭비한다' 는 죄목이 붙으면 그 누구도 용서를 빌 데가 없을 만큼 '민간 신앙' 으로서도 깊은 뿌리를 내리도록 정부는 '외환관리법' 의 의미를 강화하는 데 어느 의미에선 성공해 있었다.

그래서 외환관리법이 없어지는 것에 대해 심리적으로 진공 (眞空) 의 두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

자본의 해외도피 같은 것을 막는 제도를 강구해야 한다는 위구심 (危懼心) 이나 외국의 단기투기자금 (핫머니) 의 농락에 대한 방비책 마련 걱정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외환준비금 정책을 포함하는 금융정책, 세제 (稅制) 를 포함하는 재정정책 등 이른바 거시정책의 안정적 집행으로 도모 (圖謀) 할 목표다.

정부의 '관리' 에 의해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은 이미 멀리 지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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