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으로 의사봉으로 … 두 번 통과된 ‘FT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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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번에 민주당은 전기톱과 해머를 들고 오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도 과거 책상 위에서 선보였던 ‘공중부양 신공(神功)’만큼은 자제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22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박진(한나라당) 위원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는 데엔 한바탕 소동이 불가피했다. 사실 한·미 FTA 비준안은 상임위 여야 간사들이 이날 표결 처리하기로 합의한 사안이었다. 그럼에도 야당 의원들이 이날 물리력으로 의사 진행을 막은 것은 나중에 여당으로부터 “당신들도 그때 묵인한 것 아니냐”는 역공을 피하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22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노당 강기갑·한나라당 정옥임·친박연대 송영선 의원(왼쪽부터)이 의사봉을 두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김형수 기자]

회의는 시작부터 어수선했다. 오전 9시40분쯤 박 위원장이 들어오자 민주당 최규성·김영록·김우남, 민노당 강기갑·이정희·곽정숙 의원 등이 위원장석을 에워쌌다. 최규성·김영록 의원은 상임위 교체를 통해 공격수로 긴급 투입됐고 나머지 의원들은 외통위 소속이 아니었다. 박 위원장이 “외통위 소속 의원들은 자기 자리에 착석하고 다른 상임위 의원들은 회의장 뒤쪽에 앉아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들은 “오늘 한·미 FTA 비준안을 처리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물러가겠다”며 버텼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위원장석을 야당 의원들이 포위한 진풍경을 바라보며 현안 보고를 했다.

오전 11시10분쯤 회의의 마지막 안건인 한·미 FTA 비준안을 처리할 차례가 되자 긴장이 고조됐다. 박 위원장은 “장내 질서 유지 차원에서 보좌진·방청인은 모두 퇴장하고 기자들도 일부만 남기고 나가 달라”고 주문했다. 한나라당 정진석·정옥임 의원 등이 ‘위원장 사수조’로 나서 위원장석 주변의 민주당 의원들과 몸싸움을 시작했다. 민주당 천정배 의원이 “왜 미국보다 우리가 먼저 처리해야 하느냐”고 항의하자 친박연대 송영선 의원은 “남의 상임위를 이렇게 방해하고 난리냐”고 소리쳤다.

몸싸움과 고성이 오가는 와중에 박 위원장이 오전 11시30분쯤 “안건 18항을 상정합니다”며 의사봉을 두드리자 야당 의원들이 달려들어 마이크와 의사봉을 빼앗았다. 한나라당 황진하 의원은 아수라장 속에서 비준안 심사보고를 했다. 오전 11시45분쯤 박 위원장은 “이의가 없으시면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정부 원안대로 통과됐음을 선포합니다”고 말하고 주먹으로 책상을 세 번 두드렸다.

민주당은 “이의가 있다고 손을 들었는데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며 원인무효라고 주장했다. 속기록에도 박 위원장이 “이의 있습니까”라고 묻는 대목이 빠져 있었다. 절차상 하자 시비를 우려한 박 위원장은 이날 오후 5시15분쯤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기습적으로 다시 한번 통과시켰다. ‘의결 재확인’이란 형식을 취했지만 실질적으론 ‘재의결’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때 친박연대를 제외한 야당 의원들은 회의에 불참한 상태였다. 한나라당은 비준안의 본회의 통과는 6월 국회에서 추진할 방침이다. 

김정하·이가영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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